Space Giraffe

김기린의 홈페이지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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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진 상황을 피하지 말것, 받아들이는 것의 중요성 : 그래야 그것을 넘어선 발전이 존재하고 그릇이 커지는 긍정적 효과가 있음. 다만, 마음이 무척 아프고 스트레스가 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수많은 것들.

목표를 향한 담금질 : 높은 이상을 향해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못해도 그 절반이라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다듬고 다듬고 또 다듬고의 반복.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파는 방법에 대해 : 어떻게 해야 팔 수 있는지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 기술의 영역이라 누군가에게 배울 수만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균형과 선택 : 나의 한계를 알아야 대처도 잘하지!

매일매일 하루의 의미 : 하루를 무탈하게, 더 나아가 잘 살아내는 사이클의 반복. 아침에 눈 뜰 때부터 시작되는 무수한 선택들과 익숙해지지 않는 루틴들. 매일 새로 쓰여지는 하루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서 규칙적으로 움직이느라 스트레스가 크다. 동적으로 살아내는 매일을 안정적으로 지키느라 에너지가 더 들고 있는 걸지도.

그동안 나는 잘 해왔을까? : 어릴 때부터 해왔던 무수한 선택들과 고민은 결국 어떤 의미를 가지고 내 앞에 나타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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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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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야가 좁아지지 않게 (매우) 조심하자.

2. 종종 도망치곤 했는데, 이젠 피할 수 없음을 느낀다.

3. 뾰족하게 박혀있는 게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꽤 있다. 도망치지 않으면서도 해갈할 수 있는 방도가 있으려나…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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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일이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

애초부터 생각이 잘못된건지, 혹은 실행이 어긋난건지, 이도저도 아니면 인력을 벗어나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인지

답답함이 가슴 속에서 불린 미역처럼 무겁게 부풀어 오르고 그 조각들이 혈관을 타고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것 같은, 바로 오늘 같은 때가 있다.

나는 이 상태를 매우 싫어하는데, 이 감정이 누그러질때까지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런 상태를 잘 컨트롤하는 내공이 부족한 것이다. 이성으로 잘 제어가 안 된다. 평소 항상성 유지를 위해 하는 행동들이 이때만은 무용하다. 시간은 항상 부족하고 마음은 욕심에 시달린다.

감정의 분진 때문에 마음의 시야가 흐리다. 감정의 이름을 읽어내고 쓸데없는 것들을 걷어내자. 내 자신이 혼란스러우면 날 것의 나를 먼저 들여다 봐야 한다.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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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고 있는건지

정신차려야 하는데,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있는데,

잠들고 싶지 않은 밤이라고

어리광이나 부리는데,

숨막히는 고요가 반갑다고

나를 폭 껴안아 주는데,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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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게 판단 실수가 일어나는 것을 마주할 때가 있다(구체적으로 말하면, 혼자 판단하면 안되는 부분에서 자의적으로 판단해 버리는 것). 더 사소하게 동료들에게 묻고 해야 하는데 이게 아직 안된다. 사실 사소한 커뮤니케이션이 너무 잦은 것 자체가 내게 큰 스트레스이다. 아마 이것이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인 것 같다. 여러 일에 대해 전환이 빠르지 않은 내 성격 때문도 있다. 다양한 업무를 다루는 지라 전환이 빨라야 하는데 사실 아직은 다양한 일을 빨리 처리할만한 깜냥이 못된다. 그래서 자칫하면 실수가 나온다. 어떻게 고칠지는 나중에 생각하더라도(혹은 고치는 걸 포기하더라도) 일단 인지는 해놓아야 하는 부분.

또한 객관적 evidence에 의거해 판단하는 것이 약하기도 하다. 주장이 머릿속으로 떠오르면 반드시 ‘왜’에 대해서 생각할 것.
(객관적으로 A인 상황에 대해 내가 너무 크게 B라고 느껴버리면 그걸 A라고 계속 인지를 못하거나 A라고 인지되는 게 막혀버림)

목표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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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이 깊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동료를 더 챙기고

앞에서 더 힘을 내서 힘을 넣어주는 힘이 되어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편은 아니지만

내가 살뜰히 마음을 모아 당신에게 진심을 다하고 있음을

잘 전달하고 싶습니다.

미운 마음이 드는 사람도 포용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은

… 될 수 있을까요. 되어야 할텐데 말이죠.

나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사람’을 데리고 가려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인간은 결국 연대하여 번영합니다)


7.26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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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으로 옳냐 그르냐만 판단 하다보니 약간의 욱 하는 감정을 제외하고는 자꾸 속이 말라가, 다양한 상상과 소소한 감성의 물길에 바닥이 보이는 것 같다. 원래 이러지 않았는데, 카메라를 들고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까지 천방지축 찾아다니던 시절이 그립고 또 그립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무슨 날인지 생각하는게 그닥 무의미해지는 지금같은 날을 원하지는 않았는데. 요새는 내가 무슨 감정인지도… 느끼기가 어려워.

번아웃일까? 더 잘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오늘 내 동료들의 표정은 어땠을까? 또 내 표정은 어땠을까?
나는 오늘 상대의 감정을 잘 짚어냈을까? 최선의 수행을 위해 정해진 알고리즘대로만 행동하다보니 점점 생각의 유연함이 떨어져 가는 것 같아. 생각을 빙글빙글 돌려서 유희의 가닥을 뽑아내던 내가 매력이었는데.
아직 내공이 부족한 거라서, 그래서 둘 다 하기 어려워서 그래,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야. 스스로 위로해본다.

그래도 점심 때 장맛비를 즐기면서 걷다 건진 소소한 것들.

<수줍게 젖어있는 장미>
<귀공자 같은 컬러의 베스파>
<회사 바로 옆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카페, 주문은 바닐라 라떼>
<제 점수는요, 91점>

어제 일찍 잠들었음에도
아침에 정말 너무나 간만에 늦잠을 자서 씻지도 못하고 모자 눌러쓰고
회사 출근시간 1분 전에 겨우 도착했는데
몸이 너무 무거워서 더 기분이 안좋았어.
근데 기분이 안좋다고 기분이 안좋은 상태로 있으면 프로가 아니잖아.
나보다 더 어찌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며 영차영차 버텼지.

그래도, 있지. 정말로 쉬고 싶어.




점점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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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살짝 걱정이다😦

생각할 것도, 고려해야 할 것도 점점 많아지다 보니 조심스러워지고 또 그렇게 흐르다보면 날카로워진다.

나의 마음을,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잊지않는 내가 되자☺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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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내지 말자.

겁먹지 말자.

부끄러울 것이 아니다.

괜찮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괜찮을 것이다.

내게 가장 솔직하게. 용기를 내서. 내게 가장 편하게.

업종(Domain)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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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시도와 피드백 / 데이터 / 자동화 / 인공지능”

5년 전, TOROOC을 나오고, 그토록 좋아하던 robot을 놓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망원동 그 작업실에서 하얀 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고민하다가,
업종에 관계없이 저 4가지가 지켜지면 좋겠다, 싶었고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다 보면, 아쉬움만 가득한 내 경험의 곳간과 불완전한 판단력이 점차 채워지고 보완되리라 믿으며
내가 어떤 역할을 할당받든 가리지 않고 달려들겠노라 결심했었다.

업종도 포지션도 가리지 않겠다 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PatientsRe:는 내게는 많이 버거운 아이템이었다. 그 뒤 Pivot을 고민하면서 던져졌던 Block-Chain 또한 내게 정신적 한계를 많이 느끼게 해주었다. 결국 내게 내재된 가장 많은 부분을 활용하여 나를 가장 많이 성장시킨 아이템은 DietFriends였고, 본인과 적합한 업종을 찾는 것이 개인을 성장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내가 너무 간과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그저 참고 버티면 잘하게 될 줄만 알았던 바보였던지라, 나 자신의 효율을 발휘하는 곳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그때는 못하였다.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좀 돌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나름 나에게 적합한 동굴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빠른 시도와 피드백 / 데이터 / 자동화 / 인공지능” 이 4가지를 지키면서 말이다.



Co-Fou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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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회사를 만든 건 대표님.

약 1년 반 뒤에 합류한 나.

그리고 다시 1년 뒤에 합류한 SY.

이렇게 셋이서 함께 시간을 보낸지 4년째이다.

한날 한시에 모여 이 일을 시작한 건 아니지만

중간에 Pivot이라는 아주 큰 이벤트를 겪은 이후로는

어째 셋이서 같이 가는게 당연해져 버렸다.

그 고된 부침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여기까지 온 우리들.

어떤 판단도 셋이서 같이 하고 있고, 누구 한 명의 의견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지적 공동체로서 존재하고 이끌며 그 덕에 나름 균형을 가진 시각으로 회사를 운영 중이다.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나’는 ‘우리’의 판단을 믿는다.

‘하고 싶으나 힘든 것’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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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기 싫은 걸 해야해서 힘든 것

2) 하고 싶은 것이나 익숙치 않음 + 여러 난관이 예상되기에 힘든 것

1과 2가 엄밀히 다르기에 현재 어떤 상황인지 면밀히 구분되어야 하는데, 결국은 ‘힘든 것’으로 귀결되다보니 마지막에는 이도 저도 다 싫고 어쩐지 다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요새 너무 불쑥 불쑥 든다.

현재 상태에 불만족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더더욱 그렇다. 간절함이 모자란 것일까? ‘힘든 것’을 견디는 것 또한 에너지를 쓰는 일이어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는 마음이 너무 드는 것에 대해 고민 중이다. 어릴 때는 무식하게 힘든 모든 것을 아무렇지 않게 떠안고 생명력을 소진하는 쪽이었다면, 지금은 에너지 총량을 계산하면서 스스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컨트롤 하다보니 더더욱 그렇다.

1은 놓아도 되지만 2는 그러면 안될 것 같은데 2조차 에너지 임계점에 다다르면 ‘하기 싫은 것’으로 바뀌어 버리는 요즈음에 대하여.

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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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하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 중이다.

순간의 즐거움들은 참 많지.

맛있는 음식, 좋은 옷, 각종 모임, 순간의 사랑 그 모두

반짝거리는 듯 보이지만 내겐 하루도 못갈 즐거움들.

민들레 홀씨마냥 눈부시고 하얗게, 그렇지만 작은 날숨에조차도 허무하게 사라지는 그 모든 것들.

흔들리는 마음 속에 종종 진심도 있었으나 종래에는, 어쩐지 다 허무하였다.

그래서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내가 재미가 없어 보일지라도 지난 수 년간, 난 지금처럼 살아가는 것 외에 도저히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다 허망하여 내 가장 소중한 이 시간에 가장 허무하지 않을, 가장 후회하지 않을 선택만을 하려 노력 중이기 때문이다.


제게 진심으로 즐거운 것이 있을까요?

제 시간은 잘 쌓이고 있을까요?

이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유저와의 라포(Rap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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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내의 ‘무엇이든 말해주세요’에 유저분들께서 문의를 남기면, 최대한 정성스럽게 답변을 드리고 있다. 유저들의 목소리는 항상 귀하고 소중해서, 어떤 의견이든 그저 주심에 감사하다(그리고 뭐가 안된다는 불편사항은 언제나 특A급으로 처리 중이다).

내가 드린 답변에 저렇게 종종 다시 감사 답변을 달아주신다. 아직 우리가 유저수도 많지 않고 갈 길도 너무나 멀지만, 이 정도 라포라면 괜찮다. 힘내서 갈 수 있다.

유저분들과 이런 따스한 온도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자랑이다.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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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는 각종 불안을 가지고 살아간다.

불안은 심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

그리고 불안을 누르기 위해 다른 활동에 몰두한다.

그리고 그 활동은 신체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

그럼 불안에 의해 낭비되는 에너지는 인간의 생 전체에서 얼마나 될까.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근원적 수단으로써 딱 하나 내가 알 수 있는 것,

진심에 수반하는 용기 – 그것 뿐이다.

진심을 빠르게 깨닫는 훈련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 훈련
온 마음을 혀 끝에 담에 부드럽게 건네는 훈련

아직도 잘 되지 않지만,
이 나를 인내심 있게 지켜봐 줄 단 한 사람을 찾아서.

나 또한 인내심을 가지고 그 사람을 지켜볼 수 있기를.

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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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내가 나에게 가장 냉정하고 엄격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파서 그동안 피해왔던 것.

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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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한창 글공부 했었을 때 썼던 글인거 같다. 집에서 학교로 가는 순간을 최대한 디테일하게 적어보고자 시도했던거 같다. 파일 뒤적이다가 갑자기 발견했는데 처음엔 우리 오빠가 쓴 글인줄… (문체가 어쩐지 울오빠 느낌이다?)

왜 쓰다가 말았는지 모르겠지만 일부 가져와본다.

———–

나의 등교(지금은 출근이지만)길은 장황하다. 경기도까지 걸어서 20분 거리인 이곳 서울의 북쪽 끝에서부터 과천과 맞닿은 나의 학교까지 주욱 패스를 그어보자니, 직선으로 그어도 이 거리는 답이 안 나오는 답답한 거리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버스로 20분,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서 50분, 그리고 다시 역에서 학교까지는 버스로 20분이다(윗공대 가는 길은 여기서 10분이 더 소요된다). 이쯤되면 차라리 지방에서 다닌다고 말하는 게 속이 덜 터지지 않을까. 나는 이 길을 벌써 7년째 다니고 있다.

길도 멀고 차편도 여러 번 갈아타야 하기에 각 환승지점에서 지하철이나 버스가 제깍제깍 들어와 주는 것은 중요하다. 요새는 초단위 시각까지 맞춰주는 각종 지하철 및 버스 어플 덕에 미리 교통편 도착시간을 예상할 수 있는 사회이다. 그리고 나는 그 초단위 시각까지 맞추기 위해서 매일매일을 시간을 달리는 소녀처럼 산다.

일단 집 아파트 자동문을 나서는 순간, 버스 어플이 실행된 내 스마트폰을 연신 새로고침 하면서 나의 등교여정은 시작이 된다. 집에서 정류장까지 여유있게 걸으면 6분이다. 그러나 장장 한시간 반이 넘는 나의 등굣길을 생각했을 때 초반부터 여유 부려서는 등교시간이 한없이 늘어질 위험이 있다. 게다가 바로 눈앞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놓치는 사태는 없어야 한다(하루에 몇 번 겪다보면 멘붕이 올 위험이 있다). 어플을 실행하면 역까지 나가는 세 개의 버스 정보가 뜨는데 이 중에서 정류장 도착까지 3~4분 안팎인 녀석을 반드시 타야한다. 그래서 등굣길은 시작부터 전력질주다.

버스에서 내려서 연신내역까지 가는 길에는 시장이 하나 있다. 요즘은 재래시장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리모델링을 많이 한다던데 이곳은 어림도 없다. 시간을 비껴간 듯한 풍경들, 꼬깃꼬깃 붙어있는 좌판들은 왠지 예쁜 옷을 입고 지나가기가 미안할 정도다. 거기다가 좁은 길마다 느릿느릿 어르신들이 채소, 생선 따위를 들여다보고 계시기 때문에 이 분들의 흐름에 휘말렸다간 순간 나도 발이 묶이게 된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시장 뒤안길로 돌아서 ‘달린다’. 역시 지하철 어플을 계속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자칫하다가 눈앞에서 지하철을 놓치는 일이라도 생기면 아까 시장에서 길을 막고 가격을 흥정하던 꼬부랑 할머니를 원망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연신내역은 3호선과 6호선이 통과하는 곳이다. 둘 중 어느 것을 타도 2호선 서울대 입구역까지의 거리는 엇비슷하나 6호선이 약 5분 정도의 시간을 단축시켜 주기 때문에 미세하게 우위를 점한다.

생각의 깊이와 진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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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깊이 있게 하고 또한 숙고하여 정제, 다듬어 낼 수 있다는 건 정말로 좋은 장점이지만

문제는 모든 사안에 대해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 에너지 소모도 상당할 뿐더러 반대편에서 그걸 겪는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깊은 생각으로 들어가기 전에 입구에서 판단, 필요한 생각만 입장시키고 나머지는 입구컷해서 그 전에 핸들링 하는 기술이 상당히 필요.

+) 사고의 결과만 달랑 전달하지 말고, 내가 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됐는지 중간과정을 솔직하게 잘 전달하는 것도 매우 중요. 그것이 내 소중한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는 태도.

++) 무겁고 깊은 생각을 무겁지 않게 전달하는 기술 또한 매우 필요.

이상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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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무언가를 얻은 것 같은데

동시에 분명하게 무언가를 잃은 느낌이다.

아주 소중히 여기던 무언가를.



그리고 최근에 깨달은 게 있는데

난 화사한 성격이랑은 거리가 먼 것 같다 ㅎㅎ

아무래도 아직 다 놓지 못한 것 같다.

생각의 방향도 결국 선택이다. 얼마든지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바, 습관처럼 들어가던 막다른 길의 그 직전에서 조금 각도를 틀어보는 시도도 해보자.

좀 더 경쾌하게!

중심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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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단단히 세우기 위해

매일 끊임없이 나 자신을 점검한다.

세상에는 부러운 것들이 참 많아서

그런 것들을 오래 들여다보면 나 자신이 조금 초라해 보일때도 있지만

내가 만들어가는 진주알을 믿으며

온전히 살아낸 하루에 감사해하자.

이대로 몰래 스러진다고 해도

나는 내 자신에게 더없는 풍요로움을 선사했음을 항상 기억하자.

내가 선택한 삶이 부르는 결과에 순응하자.

내가 나에게 위로받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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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스스로에게 위로 받을 때가 있는데 대체로

과거에 만든 컨텐츠를 발견할 때이다.

글이든 그림이든 그 자체로 내게 힐링이다.

이 피아노곡도 그렇다. 솜씨는 어설프지만 그때의 감정은 잘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때의 나에게 작은 감사를.

오늘의 play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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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요
F.Liszt(리스트) – 초절기교 연습곡 4번 마제파(mazeppa)
Seong-Jin Cho – Chopin Polonaise in A flat major Op. 53

산책송
SISTAR (씨스타) – So Cool <- 예전 방송댄스로 배운적 있어서 춤추면서 산책
안테나뮤직 Warriors Live –  Ready, get set, go!(vocal 박새별), Running, 여름날, 뜨거운 안녕

오늘도 넘나 귀여운 고양이를 봤으나 도망가따 흑흑…

바닥에 앉아서 고양이랑 눈싸움하던 중에 엉덩이가 가려워서 보니, 민달팽이가… ㅋㅋㅋ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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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좋아하는 것은 오히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내게 있어서 무한도전이 그렇다. 보면서 웃기도 많이 웃고 울기도 많이 울고… 미드 프렌즈도 내게 무척 소중했는데, 무도는 그 몇 배의 느낌이다. 프렌즈도 10년 무도도 10년인데, 프렌즈가 친구라면 무도는 가족이랄까? 내 인생이랄까? 뭔가 그런 느낌이 더 강하다. 토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오빠랑 함께 티비 앞에서 무도를 틀었지. 또 학부생 때부터 혼자 과제하는 시간이 많아서 그때마다 항상 내 심심함을 채워주던 존재였고, 밤새 3D 모델링 하면서 무한도전 방영분을 다시 돌려보는 게 그 당시의 일상이었다.
혼자 살게 된 지금은 아예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도여서 더더욱 가족이나 다름없어졌다. 15년 동안 무도를 보다보니 수십 번 이상 본 회차도 존재한다. 무도는 종영했지만 10년 넘는 방영분이 쌓여있고 그것이 매 순간 편집되어서 유튭에 올라오는지라 종영됐다는 느낌도 안 든다. 심지어 지금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너무 재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물론 재미없는 회차도 당연히 있지만 워낙 방영분이 많고 길어서 그 긴 세월 중 하이라이트만 편집해도 충분히 재미가 뽑혀 나오고, 그렇게만 뽑아도 역시 너무 많다(행복).

어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재미로만 봤는데, 나이가 드니까 점점 다른 관점으로 무도를 시청하게 된다. 삶의 고됨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다 보니 예전보다 더 멤버, 제작진, 스탭들에게 감정이입하게 되는 부분도 있고, 또 프로그램이 10년이나 하다 보니까 그 시간 동안 멤버들간의 역학관계의 변화와 멤버 개개인의 발전, 성장, 늙어가는 모습을 통시적으로 관전하는 재미도 추가되었다.

할 말이 워낙 많은 프로그램이라… 생각나는 대로 천천히 추가하려고 한다. 멤버 개별로 리뷰도 해보려고 한다(특히 유재석, 정형돈).

우리나라에서 다시 나올 수 없는 예능이라고 생각하고, 나의 젊은 날에 무도가 있었어서 정말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눈물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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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샘 조절 근육 같은 게 약한가? 싶을 정도로 눈물이 자주 난다. 정확히는 감정에 눈물 반응을 과하게 동반한다.

웃겨서도 울고 답답해서도 울고 애틋해서도 울고

처음엔 자기 연민이 지나친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어제 친구 생일모임에서 웃다가 눈물이 펑펑 나는 걸 보니 뭔가 이상한 것 같기는 하다(좀 잘 웃기는 하는데, 눈물나도록 웃었다라기엔 현상적으로 눈물이 너무 많이 나왔다 어제는).

게다가 부모님 생각하면 거의 99% 운다. 대체 왜?? 심지어 두 분 다 건강하고 무탈하시다 (살아온 과정의 힘듦이야 각자의 공/과가 있고 가족 모두가 함께 견딘 것이어서 누구를 굳이 연민할 이유가 없다).

삶이 힘들어도 좀 무덤덤하게 사는 편인데, 내리누른 감정이 어딘가의 반작용 같은 것으로 작용해서 마치 풍선의 반대쪽마냥 눈물로 튀어나오는 건가 싶기도 하다. 아니면 이도저도 아니고 그냥 기계적으로 눈물샘 조절 근육이 약한 거거나…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상해 보이긴 할 것이다.

그냥 이상하게 보이게 놔둘 것인지, 아니면 해결책을 찾아볼 것인지? 고민된다. 분명 원인이 있을텐데 말이지.

산책 중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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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큰 장미. 향기도 굿

내 앞에서 울고 부비고 식빵굽던 고양이. 냥냥펀치가 무서워서 만지지는 못했는데, 도망가지도 않고 나만 쳐다보고 내 곁에만 머무르는 바람에 나도 집에 못 들어가고… 손을 내밀어도 살짝 깨물기만 할 뿐, 뭔가 원하는 게 있었던 거 같은데 내가 눈치가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비 오는 밤이었던 지라 결국 감기만 걸렸다 킁ㅠㅠ 그래도 감기 걸릴 줄 알면서도 30분이나 있어줬다 너.

오늘 산책 중에는 바퀴벌레 두 마리 발견(말 그대로 바퀴벌레 띠용) 사진은 안 찍었다…

여러 감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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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동료들이 너무 좋다. 드래곤볼 모으듯 애써서 소듕히 모은 내 동료들…
  2. 항상 언제나, 다이어트 프렌즈 유저님들은 그저 빛이고 사랑이다.
  3. ‘집-회사-집-회사’만 아주 성실하게 수 년째 반복 중이다. 답답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가끔은 아주 미칠 것 같기도 하지만) 이제는 이게 내가 선택한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4. 소소한 스트레스 풀기로 ‘밤에 산책하기’는 여전히 유지 중이다. 날이 점점 따뜻해져서 걷는 기분이 너무나 좋다. 요새 갑자기 서태지에 꽂혀서 2020년에 90년대 추억팔이 하면서 운동 중이다.
  5. 눈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흐리던 초점도 조금씩 맞아가고 있다. 세상이 선명해져서 사람 구경만 해도 마음이 즐겁다. 타인에게 조금씩 더 관심이 가게 된다.
  6. 최근, 가족의 일이 조금씩 풀려서 가족 전체의 행복도가 증가했다.
  7. 여름 되기 전까지 안정적으로 2kg 정도를 더 빼고 싶다. 거의 매일을 기초대사량 이하로 먹고 있는데, 람희와 함께 하고 있음에도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점심 때 떡볶이/라면 등이 먹고 싶어도 참는다. 입고 싶은 옷들을 생각하며 힘내자 기린.
  8. 말과 판단력이 조금, 아주 조금 빨라진 것 같다.
  9. 이제 얼마 뒤면 ‘나 자신’이라는 성 밖을 나오길 결심한 지 2년이 된다. 걸어온 만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10. 또한, 이제 얼마 뒤면 ‘다이어트 프렌즈’ 앱이 출시된 지 1년이 된다. 후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르지만 그 소회는 1주년 그날에.
  11. 정신과 마음의 건강 유지에 (정말 무지) 애쓰고 있다. 매일매일이 시험대여서, 가다듬고 가다듬고 또 가다듬는다. 균형감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자다 일어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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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2분이라도 더 자려고 버둥거리는 주제에 이상하게 신새벽에 갑자기 깼다. 그리고 여기가 생각나서 이곳으로 왔다. 마음이 가득 찼는데 아무도 없으면 자연스레 이곳으로 오게된다.

최근에 라섹을 받았다. 남들은 대학생때나 받은 수술을 왜 이제 받냐 싶겠지만, 이제는 세상을 그리고 나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보고 싶었다. 안경없이 잘 보이는 세상이란 어떤 걸까? 가 궁금했는데 이제 조금씩 그 의문이 풀린다. 아직은 좀 흐리지만 더 잘 알게 되겠지.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한다.

일은 즐겁다. 다만 총량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싶다. 꾸역꾸역 나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며 일해 왔더니 이제 버틸 재간이 없어서, 더 있다간 건강의 벼랑이 기다리고 있다. 일에 대한 나 자신의 수동성 + 집착성이 나를 다 태워먹는 느낌이다. 조절이 필요한데 조절법을 잘 모른다. 어떻게 해야 이 시기를 현명하게 잘 풀어나갈지 고민도 되고 걱정도 많다.

졸려서 글쓰기 힘들다. 그 밖에 많은 감정들이 있고 걔 중에는 누군가가 보고싶은 그런 것도 있지만 이만 묻고 가야지.

갑자기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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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뛰쳐나왔다. 그냥 이적이 생각났다. 요새 대중들에게는 이적이 ‘다행이다’/’걱정말아요 그대’/’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등의 소프트한 발라더 느낌으로 각인되어 있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이적은 훨씬 훨씬 훨씬… Geek하고 Dark하고 Minor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급식실을 청소하던 당번 고정 멤버가 4~5명 있었다. 뒤섞인 음식 냄새가 금속에도 배어버린 그 급식실 한켠에는 선생님 전용 휴게공간이 있었다. 그 안에는 싸구려 천소파와 줄이 망가진 기타가 있었고, 나는 급식실 청소를 같이 하던 친구들과 그 기타를 엉망으로 치면서 패닉의 ‘왼손잡이’를 목놓아 불렀다.
어쩐지 집에는 패닉 1집 테이프가 있었고 나는 뜻도 모르고 ‘왼손잡이’, ‘달팽이’를 따라 불렀던 그때가 25년 전이다. 즉, 22살 이적의 시작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이적은 그야말로 Outlier였고, 패닉 2집의 이적은 심지어 공포였다 (문자 그대로 공포였는데, 그 이유는 패닉 2집의 커버 일러스트가 진짜 그로테스크하고 무서웠고 노래들도 이와 결이 같았기 때문이다 ㅠ ㅠ)

나는 단 한 번도, ‘좋아하는 가수’로 이적을 먼저 꼽아본 적이 없다. 근데 나는 그냥 평소에, 너무, 자연스럽게, 수시로, 이적을 듣고 있다.
‘눈 녹 듯’/ ‘왼손잡이’/ ‘달팽이’/ ‘로시난테’/ ‘Rain’/ ‘하늘을 달리다’/ ‘뿔’ / ‘숨은그림찾기’ /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기다리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UFO’… 이적을 이렇게나 듣는데 내가 이적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와서 너무 익숙한 탓에 좋아하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 동네 소꿉친구 같은 느낌 – 그래서 그런 거겠지.

그래서 이적이란 사람이 얼마나 대단하고 천재인지도 새삼스레 깨닫는다. 작곡 작사 노래 모두 어떻게 이런 재능이 한 사람에게 있을까 싶어서, 가끔 외모 때문에 방송에서 개그캐로 소비되고 있는 게 너무도 아까울 정도로 정말이지, 정말이지 이적은…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기다리다>

날카롭고 환상적으로 베어 들어오는, 패닉 시절의 노래들.
항상 내 마음의 바닥까지 곧장 닿는다.

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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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준비된 업무 환경…>

코로나로 인한 외출 스트레스/위험을 줄이고자 회사가 재택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첫날 소감은, 몸은 편한데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더 피곤하다…
주말에 집에서 혼자 일하는 거야 뭐 누구랑 커뮤니케이션할 일 없으니 딱히 불편한 건 없는데, 평일업무는 팀원들과의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이 5할 이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팀원들이 보고싶다 ㅠ ㅠ
주 2회 정도는 할만 할 것 같은데 맨날은 어려울 것 같다.

+ 일하는 시간은 더 늘었다…….
++ 자연광이 가득한 집을 사리라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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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7살때부터 12살까지 피아노를 배웠었다.
아예 실력이 노답은 아니었던지라 6년이나 배웠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배운 셈이지만 서두에서 말했듯 배우는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그 배움이 즐겁지 않았고, 체르니 40까지는 쳐야 한다는 엄마 때문에 꾸역꾸역 피아노 학원에 다닐 뿐이었다.

90년대 초반에 원목 업라이트 피아노를 샀으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내게 큰 투자를 해주신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원 그만 둔 이후로는 피아노는 쳐다도 안 보게 되었다 (어지간히도 지겨웠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자발적으로 피아노 뚜껑을 열게 된 건 20살에 뉴에이지 피아노를 듣고 그 아름다움을 알게 되면서 부터였다. 그에 비해 학원에서 배웠던 하농/체르니/부르크뮐러/소나타 등등의 곡들은 내게 너무나 매력이 없었고, 악상 기호 따라서 쳐야 하는 이유 또한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곡들이 안 좋았다기 보다는 그 곡들을 악상 기호에 따라 또 올바른 박자에 따라 제대로 연주했을 때 그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누구도 내게 들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당시 다니던 피아노 학원 원장님은… 정말 정말 죄송하지만 그다지 좋은 교육자는 아니셨던 것 같다. 차라리 완곡을 한 번이라도 쳐주셨다면… ㅠ).

“배를 만들게 하고 싶다면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 그러면 스스로 배를 만드는 법을 찾아낼 것이다.” – 생떽쥐베리

완벽히 들어맞는 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내가 피아노를 잘 치려고 스스로 노력하게 된 건 피아노 음의 아름다움을 좀 더 느끼게 되면서 부터이다. 뉴에이지 뿐만 아니라, 어릴 때 잘 접해보지 못한 고전 작곡가들의 피아노 에튀드/콘체르토를 알게 되면서 피아노에 대한 관심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더 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어린 시절의 6년을 보냈었다면 좀 더 충실하고 지금까지도 의미있는 추억을 만들었을텐데, 그 때의 꼬맹이는 피아노 학원 연습실에 갇혀 어떻게 하면 7번만 치고 들키지 않게 10개의 동그라미에 색칠할 수 있을까만 궁리했던 것 같다 (혹자가 말하길 1번 치고 3개 칠하는 건 국룰이라고…).

지금이야 손이 많이 굳어서 어릴 때처럼 매끄럽게 치지는 못하지만 가끔 스트레스 풀기 위해 간단한 곡들을 연주할 정도는 된다. 나중에 은퇴하면 피아노 많이 많이 쳐야지!(생각만 해도 신난다🤸)

유저를 만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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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캐릭터 디자인’ 외에도 유저를 만나고 응대하는 것 또한 나의 일이다.

여기에는 유저 CS, 유저 인터뷰, 앱스토어의 유저리뷰 응답 등이 포함된다. 유저를 접하는 일은 항상 내게 큰 기쁨이고 이 일에 더 몰입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앱을 만들어 나가는 방향을 잡아나가는 데에 있어서 유저의 의견은 필수적이다. 최초에 서비스를 설계할 때에도, 서비스를 출시한 후에도 우리는 계속 유저의 목소리를 동아줄 삼아 잡고 올라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년 6월에 처음 출시했었을 때 ‘다이어트 프렌즈’의 완성도는 지금과 비교해 보면 아주 낮았다. 아무리 MVP라지만 아주 당연하게 생각되던 기능들도 안됐었는데(검색한 음식 & 직접 입력한 음식목록 저장, 음식량 숫자 직접 입력 등등…) 각 기능의 완성도가 Lv.1 인 상황에서, 철저하게 유저 니즈에 따라 완성도를 올려 나갔고 그 결과가 지금이다 (그래서 현재 기능들 중에는 여전히 Lv.1인 기능들도 있다).

나는 무언가를 만들 때 처음부터 (내 기준에서) 높은 완성도를 가진 채 세상에 내놓는 성격인지라 그런 판단들이 익숙하지 않았는데, 그 당시 그런 결정을 했었던 대표님의 과감함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고 효율적이다. 요새도 기능을 붙여나가다 보면 우리가 처음에 어떠했었는지 잊고 너무 많이 만들려고 할 때가 있다. 그래서 뭔가를 기획 시에는 조심조심해야 한다.

암튼, 앱의 완성도는 우리 앱의 핵심 가치를 느껴주는 유저들의 요구사항을 철저히 따라가면서 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유저들의 목소리를 아주 깊이 들을 수 있는 ‘유저 인터뷰’를 거의 매주 시행하고 있다. 이렇게 유저들을 만나뵙고 대화를 나누게 되면 막막했던 기분들이 풀릴 때도 있고, 새로운 좋은 아이디어를 선물처럼 받기도 한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유저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는 작업을 출시 전부터 꾸준히 반복해 왔는데도 아직도 긴장을 많이 한다 (인터뷰 직전 20분 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유저 스스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알아서 말해줄 수 없기 때문에 우선 인터뷰어가 질문 설계를 잘해야 하고, 2) 순간순간 유저의 대답에 따라 순발력 있게 핵심에 파고드는 질문을 생성해 내지 못하면 그 인터뷰는 앱을 발전시킬 만한 Clue를 얻지 못한 채 끝나게 된다. 3) 또한 유저가 상황을 편하게 느끼도록 좋은 리액션과 센스있는 배려도 필요하고, 4) 긴 인터뷰 시간 동안 유저가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호흡 조절도 해야 한다.

(이 중 유저의 말을 실시간으로 따라가고 기억하면서 순간순간 질문 만들어 내는 게 제일 어렵다. 유저도 말하다보면 횡설수설 할 때가 있고, 나는 이 중 핵심만 잡아내어 디테일하면서도 논리적으로 맞추어 내는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

나는 순발력/대인응대력 둘 다 평균도 안 되는 사람이어서, 저런 것들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 (난 누군가와 장시간 얘기하는 것도 힘든 사람이다).
다이어트 프렌즈로 피봇하기 전, 블록체인 기반의 보상형 커뮤니티 아이템을 시도해보기 위해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 하러 다니던 2018년 여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 최전선 인터뷰어로서 사람들을 만나 답을 구하는 이 과정을 반복하고 있지만 아직도 어렵다. 때로는 상대가 불편해 할 걸 알면서도 집요할 정도로 답을 찾아 파고드는 일 자체가 심리적으로 거부감 들 때가 있다.
지금이야 경험과 기술이 좀 늘어서 나도 상대도 불편하지 않게 답을 찾아나가고 있지만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다… ㅠ ㅠ

그래도 우리 모두가 애쓰고 공들여 만들고 있는 이 서비스를 제대로, 때로는 날카롭게 평가해 주시는 유저들의 목소리는 항상 귀하고 반갑다. 인터뷰 요청을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셔도 되는데 어떻게든 도움 주시려고 손 잡아주시는 유저님들, 정말이지 너무 감사하다. 감사드린다.

펜드로잉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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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고 경쾌한 선을 위해 한때 펜드로잉 연습을 많이 했었다. 바라는 직선과 곡선을 한 번에 표현할 수 있길 바라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그려댔지.

결국 제품 디자인은 하지 않게 됐지만 지금도 이것 저것 그리고 싶다. 어릴 때는 그리는 것이 당연해서 뭔가 그렇게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잘 안들었는데 요새는 부쩍 그런 마음이 든다. 조용히, 긴 호흡으로, 오롯하게 그리는 데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간절한 요즈음.



좋아하는 웹툰 속 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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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웹툰 ‘바토리의 아들’의 미겔

다음웹툰 ‘껍데기’의 강도하

다음웹툰 ‘유리의 벽’의 에드워드

내 취향 일관성 무엇…
기본적으로 다들 작화가 수려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따로 뽑아서 모아보니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얼굴의 요소라는 게 비슷한 것 같다.
셋 다 내가 좋아하는 웹툰이어서 행복하게 감상 중인데, 행복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네…

현실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느낌인 것 같기도.
언뜻 비슷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치열했던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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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본가에서 방정리를 하다가 먼지가 쌓인, 하지만 한 때 무엇보다 내 가까이에서 나를 살게 했던 무기들을 발견했다.

파스텔, 수채화, 콩테, 목탄, 색연필, 아크릴 등등… 와르르 쏟아내리는 재료들을 보니 이 재료들과 씨름하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건식 재료 중에서는 목탄, 습색 재료 중에서는 수채화가 정말 애를 많이 먹였는데 수채화는 바바라 붓이 다 닳고 갈라지도록 칠해댄 끝에 결국 적당한 물의 농도를 내가 원하는 대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목탄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지금 해보라고 해도 자신없다).

그래도 저 녀석들 덕분에 힘들었던 10대를 견뎠다. 그 당시에는 더 나은 미래를 그리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겼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내 생각과 마음을 전달하는 또 다른 언어를 배웠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말을 썩 잘하는 편이 아닌 내가 어렵지 않게 나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부모님은 이제 그림을 그리지 않는 내가 아쉬우신 것 같지만, 결국은 (아마도)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다음에는, 좀 더 즐거운 그림을 그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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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교대 운동장을 걸었다. 일주일에 2~3회는 숨 찰 정도로 걸어줘야 하는데, 겨울밤에 나갔다가 감기올까 겁나서 근래 소홀했다. 근데 어째 바로 몸이 부실해지는 느낌이 들어 주말에 귀찮더라도 채비하고 나왔다. 안경과 마스크도 썼다.

간만에 걸었더니 10분 만에 숨을 용트림처럼 내뿜는다;; 힘들 땐 하늘을 보라지, 뻥 뚫린 교대 운동장 하늘은 의외로 맑고 별도 뜨문뜨문 보였다. 예전에 영월 별마로 천문대에서 겨울의 별자리를 직관했던 기억을 더듬어서 시야에 들어오는 몇 개 안되는 별들과 열심히 맞춰봤다. 별만 보고 걷다보니 40분이 금방 지나가네.

서울, 그것도 강남 한복판에서 별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리운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따뜻함을 안고 집에 돌아왔다. 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이 많은 요즘인데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로 삶을 채워가는 것도 좋겠다

순간의 느낌과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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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느낌과 감정(특히 불안)을 다른 기분이나 취미 컨텐츠 등으로 덮어버리는 걸 조금 자제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아주 집중력이 필요한 업무의 경우에는 어떤 사소한 방해도 허용하지 않지만, 그 외의 가벼운 일들(예를 들어 집안일, 일정 정리 등의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생산적인 일들)은 도무지 빠릿하게 실행되지도 않고, 그 일에만 집중하는 동안 묻어두었던 불안감이 끼어드는 것이 싫다. 그래서 보통은 예능이나 영화 등의 컨텐츠를 틀어서 신경을 분산시킨 후 일에 착수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완벽한 고요를 잘 못 견디는 걸까. 끊임없는 자극과 긴장에 노출되어 있다보니, 혼자 있다 보면 아무것도 없는 그 순간을 잘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감이 심해지는 타입’이라고 스스로를 진단해본다. 그렇다고 실제로 만나기에는 에너지가 많이 드니까 그냥 그 연결되어 있는 감각만 필요한 것 같은데, 이게 그냥 인간의 본능인건지 내 불안증의 일종인건지 잘 구분이 안 선다.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은 흔한 현대인의 현상인걸까. 그걸 딱히 SNS로 푸는 쪽은 아닌지라 요새 유행하는 인스타그램이나 시대 지난 페이스북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혼자 이 공간에 고이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아질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안하고 (스마트폰도 안하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 심연 밑의 질척하게 가라앉아 있던 내가 외면하고 지나쳐온 것 들이 아지랑이처럼 수면 위까지 올라와 속을 엉크러트린다. 이미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니 아마 그 감정의 본질은 후회, 이겠거니. 그럼 내 불안의 근원은 내가 외면해온 후회와 제때 해결하지 못한 자기반성 인걸까? 그런 것들에 잡아먹히는 것이 무서워서 애써 의식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내도록 도와주는 흥미로운 간식(유튜브, 카톡, 웹툰, 스누라이프, 넷플릭스, 때로는 연애 등)들을 끊임없이 집어먹고 있는 꼴이다. 문제에 문제를 덮는 형국이라,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한 시점이다. 근데 어떻게?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면서도 틈틈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그건 역시 나 자신만을 위한 ‘창조’ 행위가 되려나. 일에 들들들 볶이다 보니 내 시간 하나 평안히 가지는 게 힘들었고, 괜히 다른 뭔가를 시도했다가 체력이 소진된다거나 미리 해야 할 업무를 준비하지 못해서 일에 지장이 가게 되는 것이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밸런스 잡는 연습은 계속 하고 있으니, 편안해지는 순간이 오리라 믿고 한 번 시도해보자.

대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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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찾아드는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릴 때는 이런 감정을 나누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른이 되니 다들 어디로 간걸까.

일상에서는 기계처럼 빡빡하게, 다른 생각의 틈 없이 그저 최고의 효율을 내기 위해서만 존재하다가 이렇게 개인시간이 주어지면 정말이지 어쩔 줄 모르겠다. 몸은 너무 피곤한데 정신이 아우성이다. 자연의 리듬에 맡기기엔 이미 틀렸고, 어떻게든 기계적으로 잠들어야 하는데 피곤한 눈을 감아도 묵혀두던 잡념들이 뇌관을 펑펑 터뜨린다.

다들 어디에 있니? 바쁜 삶에 휩쓸려 사라져 버린 추억들아. 닿을 수 없는 인연들아. 소식을 몰라도 다들 어딘가에서 자기 삶을 해내고 있겠지. 우리 어릴 때의 청신했던 그 모습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무척 그리워.

아침에 눈을 뜨면 어차피 다 잊고 나의 레일 위를 정신없이 달려가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쪽지 하나를 남기고 갈께, 차랑.

문제의 원인을 밝히는 일과 이를 해결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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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르다는 것에 대한 최근의 생각.

이것은 기본적으로 ‘현상->근원->해결’ 에 대한 고찰이다. 어릴 때는 세 과정을 나 혼자서 고민하곤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각 과정에서 다른 능력을 요할지도 모른다는 경험을 종종 하곤 한다.

아무래도 서비스를 발전시키다 보면 수많은 불편사항을 접하게 마련이다. 유저들은 본인 시각의 불편사항을 본인의 방식대로 해결해주길 원하지만 여러 사정 상 그렇게 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체적으로 유저는 본인이 겪은 불편한 현상에 대해서만 애기를 하기 때문에 불편의 원인을 다각도로 깊게 파악하여 단순화 시키는 일은 꽤나 분석적인 능력을 요한다.

이 과정을 거쳐서 문제점이 명료해지면 여기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이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각자의 주관이 많이 들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는 작은 개선이라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명료한’ 부분부터 개선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최선이다. 이러다보니 문제점을 밝히는 사람과 해결책을 내는 사람이 상황에 다라 다를 수 (거의 대부분 다른 것 같기도) 있다.

일 하다보면 정말 많은 회의를 하게 된다. 회의의 성격이 뭔지, 구성원 발언의 비중은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각자의 생각이 난무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 또한 상당한 능력이 요구된다.

여기까지 고찰하고 든 생각은, 이런 건 대체 누가 알려주며 다들 어디서 배우는 걸까?

조금 덜 심각하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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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100%의 에너지로 살던 나에게)

최근들어 남과 구분되는 나의 특질이 무엇일까, 궁금해왔다. 대충 평범한 10~20대를 보내면 다들 어렴풋이는 알게되는 것들을 30대인 나는 왜 아직도 모르고 있냐면

– 세상을 주로 책으로 배웠다(책에서 배울 게 많긴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책이 80%)
–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때문에 사람을 불편해한다(심지어 피한다)
– 주로 일을 혼자서 해결하려 한다.
–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 타인으로부터 비판받는 걸 매우 두려워 한다.
– 학습력을 바탕으로 한 잘 훈련된 자신으로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본래의 자연스러운 자신이 나올 기회가 적다.

동일한 상황에서 타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하고 판단해야 나의 자연스러운 특성을 정의할 수 있는데 위의 성향들 때문에 나는 내가 Standard에서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성격이 상당히 급하고 스스로의 문제해결력에 대한 과신의 대환장 콜라보로 인해 중간중간 차분하고 객관적인 논의/판단점을 잡지 못하고 혼자서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고민의 극을 달려 마지막까지 치달아버린다. 이렇게 나온 결론은 너무나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아마 이 성격 때문에 인생에서 가장 많은 손해를 봤던 것 같다. (판단이 좋지 못하지 결과도 좋지 못하고, 급한 성격에 에너지만 쏟아부으니 건강도 안 좋아지는 악순환이랄까)

나와 다른 성격의 똑똑한 동료들과 수 년을 구른 덕분에 판단력은 조금 나아진 것 같지만 성격은 아직 먼 것 같다. 그래서 새해부터는, 조금 느긋하게 사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생각만 먹어서는 변화가 어려운 것 같고, 여러 사람들과 섞이는 상황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보려고 한다. 누가 나랑 잘 맞는지, 나랑 안 맞는지 자연스러운 호흡을 해보려 한다.

그리고 모든 일에 100%의 에너지를 쏟지 않기로! 적당히 신경 끊는 게 모두를 위한 길일 수도 있다. 완벽히 수행하지 못해도 실망하거나 자괴하지 말자. 그런 것조차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거다. 놓을 건 놓고 포기할 건 포기하면서, 그렇게 순응하며 살자.

바라는 대로 가지 않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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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미리 생각하고 그에 맞추기 위해 참 애를 많이 썼는데 인생은 그렇게 살아지지도, 그렇게 살 수도 없다는 것을 요즘 들어 많이 느낀다.
1)오늘 최선을 다해도 미래에 내가 원하는 결과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예전 같으면 상기 1)항에 대해, 비효율적인 결과가 나올 것 같으면 무언가를 하다가도 중도에 관두거나 아니면 아예 시작을 하지 않았지만,
요새 드는 생각은 난 그저 이 운명의 굴레 안에서 결과를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역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사회에서의 내 역할, 일에서의 성공,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일 등 모두)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효율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 최대한 조심하고 신경쓰면서 역사의 관찰자 입장으로 살고 싶었지만 30대 중반까지 살아보니 그 혼돈의 한가운데서 아둥바둥 거리는 1인의 역할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B2C의 최전방에서 치열하게 뚫어나가는 것이 내 역할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참, 시간이 많이도 걸렸구나… 싶다. 예민하고 소심하면서도 쉽게 들뜨고 우울해지는 성격이라 최대한 외부자극을 피하고 싶었는데, 역시 인생은 맘대로 안 되나 보다.

서비스 런칭하느라 작년 9월부터 쉼없이 달려와서 마음 상태가 말이 아니다. 매일 펑펑 울어도 모자를 거 같은데 아침에 눈 뜨면 회사를 위해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이어야 하는 내가 있다. 퇴근 후에는 그 다음 날을 살기 위해 샐러드를 먹고 피곤해도 운동을 하는 내가 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는 쫓기던 하루 속 긴장의 부작용으로 멍하니 현실을 잊어버리는 나, 대체 이 균형은 어느 즈음에서 맞춰질까.

자명한 사실은 어찌되었든 나는 이 생활을 최소한 2년을 더 유지해야 하고, 그 시간 동안 내게 쏟아지는 걱정, 잔소리, 실망, 반대, 혹은 도태의 상황까지도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견디더라도 그 결과가 별로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래도 나를 위한 삶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말고… 항상 습관적으로 내 감정을 무시하고 상황과 타인에 맞추어서만 행동했는데, 아무리 인생의 큰 틀과 방향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더라도 순간순간 나의 감정을 자세하고 꼼꼼하게 들여다보면서 살아야 결과와 상관없이 가장 후회가 적다는 것만, 이 하나만 꼭 쥐고 나아가려 한다.
나는 완벽할 필요도, 누군가에게 완벽하게 보일 필요도 없다. 그저 내 마음 하나에 초점을 맞추어서 삶을 살아가리라.

(내 필요에 의해 상대를 움직이게 하는 일은 대부분 지저분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에 나는 대체로 남의 필요에 의해 움직이면서 고상하고 새침하게 굴기를 원했지만 그것이 장기적으로 나에게 정말로 좋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왜냐면 아무 자극도 없이 조용하게 혼자 있으면 도리어 불안해지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자라게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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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련의 사회적 사태와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사람의 몸에 맞추어 마음을 자라게 하는 일에 대해
사회적으로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마음을 자라게 한다는 말 조차 생경한 사람들도 있겠지.
눈에 보이는 학문적 성취, 직업적 성취 등에 우선순위가 밀려 마음 또한 나이에 맞게 차근차근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럼 대체 마음이 자란다는 것이 무엇이냐,
인간 개인이 가진 오만가지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고 표현할 줄 알면서도, 타인 또한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올바르게 소통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기에 자기 성격에 맞는 방법으로 마음을 다루는 법을 알고 극복하며 때로는 누군가가 그 방법에 대해 가르쳐 줘야 하지만, 감정의 깊이와 성숙에 대해 우리는 어디서도 터놓고 논하지 못한다. 하여 몸과 마음의 불균형이 생겨도 개인의 영역 안에서만 고립되어야 한다는 점이 안타깝다. 때로는 고립되다 못해 썩어들어가다보면, 성품이 악한 이는 타인을 해하고 선한 이는 스스로를 해한다.

몸이 건강하기 위해 밖으로부터 여러가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고 시간을 내어 운동이 필요한 것처럼 마음을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데에도 희노애락을 포함한 다채로운 감정의 스펙트럼을 외부와 주고 받는 경험, 깊은 고민, 그리고 극복이 필요하다.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회는 마음을 너무 함부로 다루고 있다. 내 마음을 존중하지 못하면 타인의 마음 또한 존중하지 못하게 되거나 혹은 타인의 마음에 지나치게 휩쓸리게 된다.
나도 이제 막 깨달은 터라 마음을 성장시키기 위한 어떤 체계성까지 생각해내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마음 또한 키 자라게 하는 것처럼 심혈을 기울여야 하며 이것 또한 타인을 판단하는 큰 지표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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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미술학원에서 처음 만났던 우리. 나는 삼수생, 그대는 재수생. 그게 벌써 14년 전.
같이 입학하고 동기로 보낸 4년. 지금에야 돌아보니 우리 인연은 그보다 더 길었네.

결혼 정말 축하해. 보기만 해도 힘이 나는 그대는 언제나 나의 비타민이야.

매일 매일의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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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바가 있다면, 목표가 있다면
관성과 고정관념을 이겨내는 생활을 매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의 변수들은 항상 변하고 있기에 (셀 수 없는 주체들이 존재하고, 시간이 공평하게 흐르는 이상 필연적이다) ‘살던 대로 산다’는 명제는 나를 점점 더 뒤로 밀어낼 뿐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순간을 새로 정의해야 한다. 미래는 과거에 있지 않고 현재에 있기에. 오늘부터 다시, 그리고 다시. 논리에 입각한 해결방안을 항상 새로 찾아야 한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면, 생각을 따라줄 만한 체력도 갖추어야 하겠다.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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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이사 및 인테리어로 요 며칠 긴장상태 였다가 끝나니 잠이 밀려온다. 근래 드물게 정말 오래 잤다.

쉬는 날이면 꼭 무언가를 해야만 인생을 손해보지 않는 기분이었는데,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목표도 긴장도 풀어진 날이면, 알기 어려운 막연한 그리움들이 잉크 방울처럼 번진다.

오래 산 것 같기도,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한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본다. 그 형상이 참으로 뒤죽박죽하다.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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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집중 안 하고 노트나 교과서 귀퉁이에 낙서하는 건 초등학교 때부터 해 온 내 유구한 버릇이다. 이번에 본가에서 책장 정리하는 김에 대학 수업 노트들을 들춰봤더니 재미있는 낙서들이 있어서 몇 개 가져와 봤다.

무슨 수업 때였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옆에 써져있는 걸 보니 아마 ‘예술과 과학’ 이었던듯..)
아무튼 프랑켄슈타인.

인류학 수업 들었을 때 했던 낙서. 제일 위에는 내가 당시에 들고 다니던 SONY MP3. 그 밑에는 누구 다리인지 모르겠다. 제일 아래는 자동차 디자인 스케치 연습.

백명진 교수님…ㅋㅋㅋ 어지간히 듣기 싫었던 수업.

편집 디자인 수업 때 그 공간 안에 있었던 선생님, 선배님, 후배님 등등이 다 있네.

뭔가 세이렌 같은 걸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정보 디자인 수업? 이었던 듯.

야하거나 섹시하거나, 둘 다 좋다.
무슨 수업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이건 아마 공대 수업 듣다가 그렸던 거 같다.
그냥 대충 만화로 끄적이려 했는데
그리다보니 삘 받아서 실사로…

정돈된 선 말고 이런 구불구불한 선도 한 번 써보고 싶었던 것 같다. 수업은 음.. 음악 얘기가 나오긴 하지만 왠지 김민수 교수님 수업이었을 거 같다.

아마 수업시간에 집에 가서 자고 싶은 마음을 그렸나 보다. 저 선은 고등학교 때 크로키 할 때 주로 썼던 선이다.

아마 더 뒤져보면 많이 나올 것이다. 기억하기로는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도 낙서가 빼곡… (종이랑 연필만 있으면 뭐라도 자꾸 그리게 되는 본능이 있다)

Summer Va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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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 우리의 우정이 벌써 4년을 향해 간다. 우리 인생 전체를 봤을 때는 그닥 긴 시간은 아닌데도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편안해.

너가 차려운 식사, 너가 틀어준 음악, 너의 웃음소리, 너의 얼굴 그 모두가 내 마음을 탁 풀리게 해. 그래서 너가 나를 쉬게 해.

닮고 싶은 센스와 세련된 취향. 올곧은 심성. 내 철없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는 너를 알게 되어서 정말 행운이야. 힘든 순간을 슬기롭게 이겨낸 후 마음이 조금 더 자란 상태로 다시 마주한 너와 나.

그렇게 새벽 4시의 떡볶이. 늦은 아침의 커피와 시리얼. 두 팔 가득히 안고 온 향기로운 생화와 우리의 짧은 여름방학.

밤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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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만 걸으려 했는데 1시간이나 걸어버렸다. 요새 밤공기도 좋고 시원해서 걷다 보면 절로 흥이 나고 그러다보면 생각보다 오래 걷게 된다.

조금 답답하고 머리가 복잡했던 것도, 음악 들으면서 열심히 걸으면 좀 나아진다. 낮에는 자리 지키고 모니터만 봐야 해서 알게 모르게 가슴 속에 압박이 쌓인다. 멀리 보고, 푸른 걸 보고, 꽃을 보고, 별을 보고, 그리고 네가 보고 싶다.

그런 그리움들을 비워야 비로소 잠이 든다.

비오는 날 들으면 좋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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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잔잔하게 Carpenters의 Close to you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노래 트랙이 넘어가버렸다… 그래서 올드팝에서 급 재지힙합으로 선회…

위의 Kenichiro Nishihara-Serendipity는 유튭에서 추천해 주는 거 듣다가 운 좋게 얻어 걸렸고, 바로 꽂혔다. 도입부의 색소폰와 랩, 그리고 비슷한 듯 하면서도 묘하게 음색 차이가 나는 여성 보컬 두 명의 어울림이 좋다. Serendipity를 하도 듣다보니 유튭 요 요망한 것이 다른 니시라하의 노래들도 추천해주는데, 곡들마다 다 대박이다. 이전에 업로드한 Embers도 니시하라의 곡.
낮에 일할 때는 Embers를, 밤에 자기 전에는 Serendipity를 듣는다.

두 번째 Re:Plus-It All Turns Out Great는 In Ya Mellow Tone을 통해서 알게 됐는데 도입부의 피아노 선율에 의한 고양감이 뭔가 들을 때마다 매번 짜릿하게 전율이 온다. 노래 전체적으로 드라마틱한 느낌이 있다. 한 때 많이 듣다가 묻어두던 곡인데, 점심 때 자주가는 식당에서 갑자기 이 노래가 나와서 바로 치어버렸다. 그래서 요새 다시 하트 뿅뿅 중.
Re:Plus는 이 외에도 Solitude, Imagine, Goodbye to your love도 좋고, Sam Ock이랑 작업한 One dream, Love도 좋다. 질리지 않도록 여러 개를 돌려가며 듣고 있다. Re:Plus를 많이 좋아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모아놓고 보니 이 정도면 많이 좋아하는 게 맞는 거 같기도.. 음…

이 참에 아예 In Ya Mellow Tone이나 다시 파볼까. 14집까지 나왔다는데.

어서 장마가 왔으면-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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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좋아하던 곡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경험을 해 본 적 있는지?
어벤저스 엔드게임 덕에 요새 한창 마블 시리즈를 정주행하다가 가오갤에서 다시 마주친 Marvin Gaye & Tammi Terrell의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마빈게이 & 태미테럴의 원곡도 상큼하고 발랄하지만 그래도 이 곡을 처음 알게된 곳은 영화 Sister act 2였다.

이 영화는 1993년도에 제작이 되었는데 나도 아주 어릴 적에 본 영화라 기억이 듬성듬성하면서도, 엔딩곡이었던 Ain’t No Mountain High Enough는 아주 멋지게 각인되어 있다.
영화 전체적으로도 감동과 깨발랄이 넘치는 지라 최근에 다시 찾아봤다 이 영화. 그리고…

<문제아 조련사 우피 골드버그>
<겁내 말 안 듣게 생긴 애들>
<핵간지폭풍 대단원의 Joyful, Joyful>

하.. 내가 이동진 만큼 영화평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면 참 좋겠다 ㅠㅠ 내가 받은 감동을 평면적이고 식상한 몇 가지 단어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쉽다. 대충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미국의 변두리 슬럼가에서 폐교위기에 처한 카톨릭 고등학교를 가짜수녀 우피골드버그의 지도 하에 결성된 문제아 합창단이 살려낸다는, 살면서 몇 번은 마주쳐 본 흔한 스토리라인 이다. 그치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소울 터지는 음악성이 핵간지이고 그게 이 영화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주인공 ‘리타’ 역을 맡은 여학생이 아주 예쁜데다가 랩/노래 둘 다 미쳤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Lauryn Hill이라고 하는 유명 가수더라…)

암튼, 다시 노래로 돌아가서, 영화 엔딩 크레딧에서 출연진 전원이 함께 춤추며 부르는 Ain’t No Mountain High Enough는 보는 사람을 눈물날만큼 행복하게 만든다. 합창단 로브를 벗어던지며 자유롭게 춤추는 아이들의 발랄함도 발랄함이지만 이 노래의 가사가 상대를 향한 절대적인 사랑과 맹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Now If you need me call me
no matter where you are
no matter how far (don’t worry baby)
just call my name
I’ll be there in a hurry
you don’t have to worry

Cause baby there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Ain’t no valley low enough
Ain’t no river wide enough
To keep me from getting to you babe

Remember the day
I set you free
I told you you could always count on me darling
From that day on
I made a vow
I’ll be there when you want me
some way somehow

Cause baby there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Ain’t no valley low enough
Ain’t no river wide enough
To keep me from getting to you babe

No wind,
No rain

Or winters cold
Can’t stop me baby
cause you are my beau
(if you’re ever in trouble
I’ll be there on the double
just send for me)
ooo baby

My love is alive
Deep down in my heart
Although we are miles apart

If you ever need a helping hand
I’ll be there on the double
just as fast as I can

찬찬히 잘 읽어보면 사랑도 이런 사랑이 없다. 때문에 이 음악은 종종 종교적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역시 그래도 사랑꾼의 사랑가로 쓰일 때가 가장 멋지다. 정말 진심을 다해 지켜주고 아껴주고 싶은 그런 사람에게 간절함을 담아 부를 수 있는 노래.

영상은 화질이 다소 좋지 않더라도(너무 옛날 영화라…) 시스터액트2 엔딩 크레딧 버전으로 가지고 왔다. 우피 골드버그 혼자서 핫블루 컬러의 옷을 입고 있는데, 출연진들의 무채색 의상과 대비되면서도 우피 골드버그가 영화 속 모두의 리더 역할을 하는 의미와도 잘 맞아떨어져서 보기에 흡족하고 좋다.
이어서 나오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A Deeper Love 도 정말 좋으니 같이 들어보시길.

최근 인상 깊은 만화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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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만화란 만화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워낙 좋아했고, 지금도 힐링은 무조건 웹툰으로 하고 있다. 일 말고 내가 무슨 활동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대충 음악듣기>만화보기>집안일하기> 운동하기>기타(본가방문, 쇼핑, 친구 만나기 등) 순인 것 같다. 아직 스스로 안정화가 덜 되어있다 보니 생활 반경을 크게 벗어나 에너지가 많이 드는 여타 활동을 못한 지 수 년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게 몇 개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지나도 부담스럽지 않게 곁에 있어주는 건 만화와 음악 뿐인 것 같다.

한국 웹툰도 좋은 게 많고 리뷰할 것들이 많지만 오늘은 훈훈한 병맛 일본만화 2개를 소개하려고 한다.

<미기와 다리 by 사노 나미>

‘사카모토입니다만?’으로 유명한 사노 나미의 신작 ‘미기와 다리’이다.
대충 스토리를 설명하자면, 미기와 다리는 13살 일란성 쌍둥이이며,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고아원에서 살다가 한 부유한 노부부에게 입양되어 마치 1명의 자식인 것 처럼 둘이 번갈아 행동하며 살게 된다. 이들의 목적은 어머니를 살해한 살해범을 찾아내는 것으로, 고아 쌍둥이의 현실성을 가장한 비현실적인 생존기라 보시면 되겠다.
표지 이미지만 봐서는 이토 준지 삘나는 호러물이 연상되지만 까보고 나면 진지한 병맛 만화이다. 개그 포인트는 주로 쌍둥이 2명의 쓸데없이 진지한 캐릭터성에서 오며(하지만 그래봤자 13살), 상황상 2명이서 1명(작중 이름 히토리)의 역할을 해야하는 무리수(애기들이 정말로 정말로 많이 무리한다…)에 또 다른 포인트가 있다.
미기와 다리는 엄마의 살해범을 찾아내기 위해 제딴에는 무척 독기를 뿜고 있지만 사실은 가족의 사랑이 필요한 어린 아이들인지라 종종 가족애가 잘 표현되는 일화가 나오면 흐뭇하다.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성도 좋아서 개성넘치는 노부부의 살갑고도 엄한 애정도 보기 좋다. 아마 노부부는 히토리가 사실은 2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행복이 2배’ 라고 외칠 이들이다.
극화체 작화가 작가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개그성을 잘 살려주는 작품이다.

<바투키 by 사코 토시오>

다음은 ‘도박마’로 유명한 사코 토시오의 ‘바투키’이다.
이 만화의 주제는 ‘카포에라’이며 나는 카포에라에 아무 관심이 없음을 밝힌다…
이 만화를 읽게 된 계기는 초반 그림체가 기괴해서(…)이다. 명색이 여자애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못생기게 그려놨었는데, 작가가 원래 작화실력이 꽤 좋은 편임에도 여자아이는 그리기 버거웠나보다…
스토리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주인공 이치리 산죠는 부모의 과보호 아래서 자라고 있었는데 사실 그녀는 브라질 갱단 ‘깃발’의 보스의 딸이며 지금 같이 사는 부모는 실은 상대 갱단 ‘창’의 조직원들이었다. 이치리가 아기 때부터 이치리를 인질로 삼으며 같이 살아온 가짜부모는 시간이 갈수록 이치리에게 정이 들어 ‘창’으로부터 도망쳐 다 같이 조용히 숨어살기로 결심한다. 부모가 이치리를 과보호 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치리가 중학생이 되던 해에 결국 ‘창’의 조직원에게 발각이 되어 부모는 보복으로 납치당하고 이치리는 혼자 남겨지게 된다. 부모를 납치한 ‘창’의 조직원 BJ는 이치리에게 몇 년 후에 있을 갱단 ‘깃발’의 상속싸움에서 이겨서 돈을 나눠줘야지만 부모를 풀어주겠다고 협박을 하고 이에 이치리는 카포에라 맹훈련에 들어가게 된다는… 복잡다단한 내용이다.
일본의 평범한 10대 여자애가 사실은 브라질 갱단의 숨겨진 상속자이며 카포에라를 통해 강자들을 무찌르고 다니게 된다는 스토리는 참으로 비현실적이지만… 작화나 주변인물들이 너무 심오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보고 있다.
처음에는 읽기 좀 어려웠는데 좀 익숙해지고 나니 작가가 원래 그런것마냥 끼워넣는 병맛들이 꽤나 재밌다. 저 위의 두번째 짤 처럼 손가락욕(…)을 너무 진지하고 멋지게 그려놓음과 동시에, 그에 놀라는 인물의 모습도 너무 진지해서… 뭐가 병맛이고 뭐가 아닌지 구분이 잘 안 된달까…
그래도 이 만화 덕분에 ‘오브리가도’가 무슨 뜻인지 알게됐다! Queen의 Rio 공연 중 관중들의 떼창 끝에 프레디가 ‘오브리가도~’라고 외치길래 항상 이게 뭔 말이지 싶었는데, 포르투갈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뜻이랜다 ㅎㅎ

이게 뭐라고 쓰는데 2시간이나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뭔가 행복해지는 기분이 드는 만화들이다. ‘멋지다 마사루’나 ‘오늘부터 우리는’ 류의 고전 병맛만화들은 최소한 컷마다 병맛 안병맛이 구분되는 흐름이 있는데, 위의 작품들은 그런 거 없이 진지하게 보고나니 병맛이더라 의 흐름인지라 어디서부터 진지고 어디서부터 병맛인지 경계를 알기 어려운 작품들이고, 이게 현대의 병맛인가 싶다.

한 컷 한 컷 열정을 다해 그려넣는 위 두 작가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나도 나중에는 멋진 병맛만화를 그려보고 싶다.

논리적인 사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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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하려던 얘기보다 길어져서 1,2로 나눈다.

고생담을 길게 쓰고 싶지는 않다. 이정훈 대표와 2016년 1월부터 함께 했으니 이제 햇수로 4년째이다. 그 간에 있었던 일을 간략히 축약하자면, 자의식이 지구 뿌시는 수준인 주인공 김기린은 이정훈이라는 무시무시한 객관화 알고리즘 대마왕을 만나게 되고 그를 쓰러뜨리기 위해(?) 수 백번을 맞붙게 되는데 번번이 통렬하게 패배하고 만다. 밤마다 패배의 이유를 곱씹고 또 곱씹다가 우리의 주인공 김기린은 어떤 깨달음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것은 본인의 논리적, 객관적, 전략적 사고의 부재(아예 없었으니 공백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였다. 어디가서 좋은 스승이라도 만나 훈련하고 오고 싶은 심정의 김기린이었으나 스타트업은 하루하루가 명줄이 남다르므로 퇴사하지 않고서야 그런 여유따윈 가질 수 없는 김기린이었다. 그래서 김기린은 매일 밤마다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낱낱이 적어서 다시 대마왕에게 도전하고 깨지고 도전하고 깨짐을 반복하여 그렇게 꼬박 3년을 보내고 나니 실은 본인이 찾던 참스승이 그 대마왕이었더라(동화 파랑새 스타일로 마무리해본다).

나는 이 경험으로 인해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Creative 방법론’에 대해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논리, 체계, 순서, 합의, 확인] – 그동안 창작에서 등한시하던 이 단어들이 더 의미있고 적합한 창작을 하게 해주는 도구라는 것을 이대표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알게 되었달까.

논리적 사고에는 여러 장점이 있지만 내가 깨달은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1) 문제의 원인(핵심)을 찾아내는데 유용하다는 것
2) 타인을 설득하는 데에 유용하다는 것

이다. 이 두 개는 내가 그동안 갖추지 못한 탓에 오랜 시간 헤매고 괴로웠던지라 이 Set이 머리 속에서 엉기어 (가늘게나마) 길로 존재하게 된 지금은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하루하루를 다르게 살게하는 작은 힘이 되어준다 (그치만 나이 들어 시냅스 새로 뚫는 건 정말 못할 짓… ㅠ)

글에 다 담지 못한 TMI 스러운 디테일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은 다른 기회에 다른 주제로 풀어보려고 한다. 다음 목표는 사고가 튼튼하면서도 부드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요새는 되도록 ‘듣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 요 얘기는 또 나중에…

논리적인 사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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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내가 논리적인 사고를 아주 조금이나마 갖추게 된 동기와 경과, 그리고 그 의미를 기록하는 글이다.

난 사실 논리보다는 꿈과 상상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몽상을 풀어내며 30년 이상을 살아온 지라, ‘논리적 사고’라는 Mind Set을 갖추게 되기까지 뇌주름을 수 없이 구겼다가 피는(…) 고통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항상 만화와 책을 끼고 살며 경계없는 상상을 그림과 글로 풀어내며 사는 게 일상이었고 그게 인생 최대의 가치였었다. 세상을 항상 다른 시선으로 보고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창작자의 의무라고 여겼기에, 오직 직관적인 감각을 훈련하는 것에 애를 썼다. 그렇게 수도 없이 그리고 또 그렸던 이유는 보는 이의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감각을 통해 그 마음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20살 때 친구가 그려준 내 정신세계…>

근데 어느 순간에 내가 세상에 드는 의문들이 내 방식으로는 풀리지 않는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걸 처음 경험했던 것이 첫회사 TOROOC에서였다. 나는 토룩에서 ‘생명체 같은 로봇’을 만들기 위해 ‘사랑스러운 로봇의 외형’과 ‘유저를 정서적으로 로봇에 Lock-In 시킬 수 있는 유저-로봇 간의 UX/UI’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획안과 연구 결과를 대표에게 제시할 때마다 생산성 있는 토론으로 이어나가기가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애정을 쏟아부어 버텼고, 그렇게 3년을 지내고 나니 내 마음에 병이 왔다. TOROOC을 퇴사하게 된 이유에는 사실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표의 불완전한 리더십과 나의 비논리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불러일으킨 과도한 스트레스가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당시에는 막연하게 토룩의 대표와 나는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며 퇴사를 결정했으나, 이후 지금의 이정훈 대표를 만나 열정팩토리에 합류하면서 나는 내 사고방식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마주하게 된다.

지금의 이정훈 대표는 ‘살아있는 알고리즘’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나름 공대에서 수업도 듣고 로봇대학원에서 인턴도 했지만 이정훈 대표 같은 사람을 겪은 건 처음이었다. 내가 ‘주관’의 극단이었다면 이정훈 대표는 ‘객관’의 극단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 이대표보다 더 객관적인 사람이 존재하긴 하겠지만 이미 나와 이대표의 거리도 충분히 남극과 북극 정도다.

서로 극단에 서있기에 서로 함께했을 시에 가지게 될 크나큰 장점이 있었지만 그만큼 맞붙었을 때의 파괴력도 상상초월이었다.

힘내자 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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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걸어온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을 믿자.

그리고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부딪혀온 너 자신의 노력을 믿자.

후회없는 판단을 위해 지샜던 밤과 눈물을 믿자.

너가 무엇이 되든 용기를 잃지 말자.

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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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과 내 마음에 좀 더 당당해지고 상처를 두려워하지 말자.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게 먼저이고, 그 다음은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다. 그래야 편해진다.

1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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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출시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갈긴다. 스스로 세상의 먼지나 다를 바 없다는 걸 알면서도-어찌되었건 삶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매일 매일 정도를 걸으며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그런 삶엔 즐거움도 있었도, 또 어쩔 수 없는 후회들도 묻어있다. 결국 그 간의 내 모든 행보가 이 시작에 집중되어 있는 지금, 기대되기도… 한편으로는 부담감에 답답하기도 하다.

이렇게 자의식에 허우적거릴 시간 보다는 한 번이라도 회사 생각을 더 하고, 또 서비스를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어느 새 내 전부를 먹어버린 ‘일’이란 존재에서 이제는 좀 빠져나와 ‘여유’를 가지고 싶다는 양가적인 감정 사이에서 요새 괴롭다. 아직도 스스로 너무 모자란 것 같아서, 시간은 빠르게 녹아 없어지는데 성취는 더딘 것 같아서, 이러다 내 젊음이 다 사라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자꾸 마음을 검게 검게 먹어온다. 철이 너무 늦게 드느라 귀중한 시간을 게으르게 쓴 형벌인걸까. 그래서 더 집중하고 더 열심히 하는데도 정작으로 허탈함만 깊어진다. 답인듯 답이 아닌듯 그 어느 길 가운데에 마음이 눌어붙은 기분이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니 요새 확실히 멘탈이 좋지 않은 듯 하다. 강하지도 않은 내가 강한 척하려니 더 힘들다. 어릴 땐 부담이 무섭지 않았는데, 철들고 나니 무섭다.

그래도, 살고는 봐야지. 요새 아무 것도 위로가 되지 않지만 그나마 노래 몇 곡이 나를 근근히 버티게 한다. 감사해요 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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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고향이지만 밖에 나와 산 지 4년째 다.  부모님께 독립하는 것이 어릴 적부터 소원이기도 했고, 나이 찬 자식이 부모님과 부대끼기도 힘들어서다. 그래도 2~3주에 한 번은 꼬박꼬박 집에 들러 얼굴을 비춘다. 

살가운 딸은 아니었다. 사실 무뚝뚝하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 극도로 절약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왔기에 미의식이 나이에 맞지 않았던 건방진 꼬마는 초라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거기에 집안 공기를 불안하고 예민하게 만드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동안 성격이 점점 내성적이고 자신감이 없어졌다.

왜 우리 집은 다른 집들처럼 대화도 많지 않고 웃지도 않는지, 돈이 생겨도 쓸 줄도 모르는지, 아빠는 세상만사에 뭐가 그리 불만이 많아서 다른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지 등등의 것들이 싫었다. 항상 그 분위기에 눌려 있었던 같았다.
하지만 대학에 가고 스타트업을 하면서 내게 조금씩 변화가 왔고, 잘은 모르겠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과의 관계를 몇 발자국 떨어져서 보는 시각이 내게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밖에 홀로 나와 살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와 힘이 내게 생겼고, 나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고 피하던 존재인 아버지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부딪힐 수 있었다. 그렇게 두려움을 걷어내고 나니 아버지의 고단함과 외로움이 보였고, 오랜 시간 그 옆에서 힘들었음에도 어쩌질 못하고 참고만 계셨던 어머니의 마음도 보였다.
컨트롤이 안 될 정도로 제멋대로인 데다가 철없는 내 언행에 상처를 많이 받으셨음에도, 갖은 힘을 다해 욕심많은 딸의 원하는 바를 모두 들어주셨던 두 분, 내 부모님.

지금도 딱히 애교있는 딸은 아니고 결혼하라고 잔소리하시면 부담감에 도망가버리는 딸이지만, 예전보다 부모님의 말을 잘 듣고 사려깊어지려 노력을 하고 있다. 사실 부모님이 바라시는 건 내가 그 분들께 무언가를 해드리기 보다는, 내가 사소한 결정이라도 부모님과 같이 논의하고 그 생각을 깊이 존중해드리는 것이겠지… 스스로의 생각에 갇혀 멋대로 치달아버리는 딸이 그 분들께 얼마나 상처였을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는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집에 갈 때마다 열심히 슈돌을 보며 남의 애기 재롱에 즐거워 하시는 부모님 얼굴보기가 여간 죄송하고 부담되는 게 아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따뜻한 한끼에, 아버지가 수줍게 챙겨주시는 감기약에, 오빠가 만들어주는 달달한 스무디에 내가 참으로 세상에 이런 사랑을 받고 있구나 하는 감사함으로 자취방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것이 아무리 내가 울며 지치고 힘들어도 다시 봄날의 물오른 가지처럼 생을 뻗어나가게 해주는 가족의 굵은 뿌리이다.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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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감정적이고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서툴다는 걸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혼자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하고 겁이 많은 것에 대해서도 말이다. 나는 컨트롤 할 수 없는 내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했고 감정이 이끄는 방향 또한 신뢰할 수 없었다. 나는 내 감정이 두려웠다. 해서 이를 강력하게 통제하는 이성과 규율을 스스로에게 부여하여 내 모든 행동의 키를 그들에게 쥐어주었다. 그 결과 내 감정은 움츠러들다못해 점점 작아져 도저히 그게 어디로 갔는지 찾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고, 내 감정을 나조차도 무시하다보니 내 존재 자체가 쪼그라들어 무너지게 되었다.

나는 내 감정을 그 순간에 솔직하게 내보이는 법을 모른다. 감정을 아끼고 튼튼하게 만들기 보다는 짓누르고 억누르는 법을 택한 결과이다. 하지만 이것은 나를 소심하고 자신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할 뿐 나를 건강하고 매력있게 만들지는 못했다. 

이제부터라도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 감정을 향해 매일 말을 걸고, 그가 내 표면으로 자유롭게 나올 수 있도록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할 듯 하다. 감정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상황에 맞게 잘 다루는 것에도 이성을 정교하게 다듬는 것 이상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많은 후회 끝에 안다.   

 

내가 스타트업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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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스타트업에서 만 6년째이다(참고로 스타트업이란 대규모 자금을 투자받기 전의 신생벤처기업을 이르는 말로, ‘고위험, 고성장, 고수익’의 가능성을 지닌 기술/인터넷 기반 회사이다. 왜 스타트업이 ‘고위험, 고성장, 고수익’ 일 수 밖에 없는지 추후 설명하겠다).

내 주변인들은 내가 왜 스타트업을 이렇게 오래 하는지(ㅠㅠ)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으므로 1)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 일을 하는지 2)이걸 왜 이렇게 오래 할 수 밖에 없는 지 조금 이야기를 풀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나는 미술을 오래 해온 사람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뭔가를 그리는 걸 좋아했고 또 또래들보다 제법 그렸기에 일찍 진로를 정하여 예고에 진학하였다. 예고에서 순수미술 보다는 미술과 사회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디자인에 더 매력을 느꼈고 대입도 디자인과를 선택하여 노력 끝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막상 디자인과에 들어와보니 대학 교육이 지향하는 배움의 방향성을 알 수 없었을 뿐더러 현실성없는 아이디어만 난무하는 상황이었다. 내 성향이 작가성향은 아닌지라 예술적(또는 추상적) 자기표현이 중요한 시각디자인은 선택하지 않고, 보다 구상적이며 다른 분야와 유기적 협력이 중요한 제품디자인을 선택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한 디자인이 보다 현실성을 띄기를 원했다. 여기서 현실성이란 디자이너가 구상한 디자인이 제품/양산화가 가능하고 그 과정에서 크게 변형되지 않고 출시가능함을 이른다. 한마디로 내가 밤새 고민하고 의도한 디자인이 거의 그대로 시장에 출시되기를 바랬다(많은 제품디자인이 설계,양산과정에서 변형이 되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아주 미묘한 변형에도 디자인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쪽으로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던 나는 내 디자인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내 디자인이 현실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서 디자인 내부의 구조와 재료의 특징, 제품 공정들을 익히려 노력했다(구조와 물성을 이해하기 위해 기계과 실습수업을 듣기도 하고, 디자인과 건물 안에 있는 작은 제품모형회사에서 일도 오래 했다).

내 디자인이 정말 좋으면 주변에서 최선을 다해서 맞춰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품 양산화 라는 건 정말 만만찮은 일이고 그 당시에 현실화 되지 못한 디자인들이 어떤 말로는 맞이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나는 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을 해내고 싶었다. 그럴수록 더 공부하려고 애썼다.

4학년이 되자 나도 진로를 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제품디자인으로 갈 수 있는 회사는 전자회사 아니면 자동차회사였다. 자동차는 전혀 내 관심사가 아니었으므로 제외하고, 남는 건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밖에 없었다. 난 회사 생활이라는 게 어떤 건지 경험해보고 싶었기에 과내 프로그램을 통하여 각 회사의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삼성과 엘지, 엘지하우시스 인턴을 거치고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결론은, 나는 일과 나를 분리하지 못하고 어떤 내 일부로 여기기 때문에 이런 태도로 대기업에서 일하다간 버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작업하는 걸 매우 좋아하고 퀄리티 높은 결과물을 위해서 아낌없이 스스로를 갈아넣는(…) 타입의 사람이다. 하지만 기업의 생산물은 나 개인의 것도 아니고 내가 끝까지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나는 나 자신으로 승부하고 싶었고 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기업에 들어가서 시키는 일을 하며 길들여지기 싫었다. 내게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고민점들이 있었다.

-회사에서 일을 배운다손 쳐도 몇 년이면 일정한 프로세스가 잡히고 나머지 인생 동안은 그걸 반복하면서 살게 된다. =>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면서 보내게 될텐데 개인의 발전은 대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회사원으로 살면서 벌 수 있는 기대소득은 한정되어 있다. 또한 사기업을 다니는 이상 50살 이상 다니기 힘들다. => 은퇴 이후에는 개인사업을 고민하게 될 텐데 그 나이 되어서 사업이라는 걸 ‘시도/실패/반복’하느니 차라리 할 거면 젊고 기회 많을 때 일찍 시작하자.

-회사에서 보는 어른들이 내 미래라고 생각하기 싫었다. => 나의 삶의 범위가 결정지어지는 것이 싫었고, 회사에 길들여져 타성에 젖는 것 또한 싫었다.

난 내 성장에 한계가 지어지는 것이 무서웠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안정을 선호하기 마련인데 그 당시 나는 그것이 무척 지루하게 느껴졌고, 왠지 젊을 때 더 많은 걸 경험해보며 외연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일었다. 항상 세상에 존재하는 무한한 지식과 내가 채 이해할 수 없는 수 많은 것들에 마음이 끌렸고, 그래서 학부생때도 내가 갖추지 못한 지식을 위해 타과 수업에 무모하게 도전하곤 했다. 아마 내가 논리/추론을 통해 연역적으로 세상을 파악하기 보다는 감각을 통해 귀납적으로 체화하는 스타일인지라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즉,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ㅠㅠ 류의 인간이라는 말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난 27살 무렵 당시 세 번의 기업인턴을 거치고도 길을 정하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계과 교수님이 주관하시는 로봇 프로젝트에 디자인/기획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고 이 일이 무척 내 마음을 끌었다. 로봇이라니..! 아직 가정용 로봇의 시대는 멀었지만 로봇디자이너는 아직 블루오션처럼 보였고 이 자리를 선점하면 내가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야를 더 들여다보고 싶어서 기계과 로봇 연구실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한 학기가 지나면서 그 연구실 출신 박사님으로부터 스타트업 창업멤버로서의 제안을 받게 된다.

이렇게 호기심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도전정신, 이전에 없던 결과물을 향한 지향, 반복되는 삶에 대한 회피심리, 나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을 통해 부를 이루고 싶은 마음의 결합이 나를 스타트업으로 이끌었다. 그게 내 첫회사인 TOROOC이다.

(다음주에 계속…)

 

하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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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구. 몸이 녹진녹진하다. 원래는 자기 전에 1시간 가량 일하고 자야 하는데 오늘은 좀 어렵다. 스트레칭 하고 났더니 집중력이 영업종료를 알린다 ㅠ ㅠ

홈페이지에 쓰고 싶은 글들이 많은데 시간이 좀 났으면 좋겠다. 어차피 내가 원하여 얻은 바쁨이긴 하지만 내일을 사는 걱정없이 충동적으로 창작에 미치고 그걸 한껏 향유하던, 옛시절이 너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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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너무 버려뒀네….

주 1회는 접속해서 지속적으로 정리,

2주에 한 번씩은 꼭 컨텐츠를 업뎃하는 걸로 노력해 봐야겠다 ㅠ ㅠ

언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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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3

언년이는 1931년 파주에서 태어났다

언년이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하지만 그 시절 무릇 딸이란 존재가 그렇듯 아무도 제대로 가르치려 하지 않았고 언년이는 혼자서 부득부득 야학에 나갔다. 언년이는 공부를 잘했다. 같이 야학에 나가던 남동생보다도 잘했다. 가마니로 겨우 가려진 옆반에서 남동생은 공부를 못해서 매를 맞았지만 언년이는 우수상을 받고 상품으로 운동화도 받아내었다. 고무신이나 나막신을 신던 시대, 귀한 운동화였지만 그 시절 딸이란 존재가 그렇듯 좋은 것은 모두 아들에게 양보해야 했다. 남동생은 소풍날 처음으로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 고무신, 나막신이나 신던 발이 운동화에 적응할리 만무했고, 벗은 운동화을 함부로 들고 다니던 남동생은 결국 잃어버렸다. 그래도 언년이는 그 시절 악착같이 국문을 배워놔서 지금 버스 노선표를 읽고 버스를 탈 수 있으니 좋다며 말갛게 웃었다.

20살의 언년이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다. 첫 아이었고 그래서 더 소중했다. 그 해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모두들 세간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지만 언년이는 갓내기를 데리고 그 험한 길에 오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명운은 하늘에 맡기고 집에 숨었다. 그동안 동네는 인민군 국방군이 번갈아가며 차지했다. 남편은 이북 사람이었지만 붉은 완장을 차길 거부했고 그래서 그 동란과 살육을 무사히 피할 수 있었다.

하루는 언년이가 아기를 업고 장에 가는 길이었다. 대청에 앉아 장죽을 문 한 노인이 언년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 혼세에 어린 어미가 아이를 기르기도 고될 것이요. 아이가 참 잘생겼으니 내게 주면 내가 잘 키워주겠노라고.
언년이는 단박에 거절했다.

하루는 일 나갔다 돌아올 남편을 위해 윗목의 화로에 두부찌개를 올려놓았다. 아랫목의 아기는 숨 고르며 자고 있었고, 그 사이에 언년이는 물을 길으러 우물로 향했다. 우물은 집에서 거리가 좀 되었다. 무거운 항아리를 이고 겨우 우물가에 당도한 순간 언년이는 어디선가 아기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를 들었다. 이상한 낌새에 황급히 집으로 달려가보니 잠에서 깬 아기가 화로의 재를 조막만한 두 손으로 쥐고 흐트리면서 울고 있었다. 장작불이었으면 그 뜨거움에 얼른 손을 뗐을 것을, 뭉근한 열기의 화롯재는 서서히 아이의 손을 녹이고 있었다. 얼른 아기를 들쳐업은 언년이는 병원으로 달렸고 그 와중에 길에서 만난 남편에게는 집에 두부찌개를 해 놓았으니 가서 식사하시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병원에서 만난 의사는 아기가 이지경이 될 때까지 뭐한 거냐고 언년이를 혼냈다. 치료에 들어갔지만 아기의 손 마디는 하나 하나씩 끊겨갔고 겨우 남은 것은 양 손의 엄지와 검지 뿐이었다. 언년이의 영혼도 뚝뚝 부러지는 기분이었다. 언년이는 하늘에 기도했다. 아기를 손가락 없는 병신으로 살게 하느니 차라리 데려가 달라고. 그렇게 자고 일어나니 아기는 숨이 없었다. 아기는 채 백일을 살다 갔다.

첫 아들을 잃은 언년이는 그 뒤로 다시 아들을 얻기 위해 아이를 낳았다. 그것도 계속 계속 낳았다. 하지만 첫아이부터 다섯아이까지 모두 딸이었다. 아들을 얻고픈 마음에 딸아이들 돌림자를 아들 자(子)로 하였다. 그 중 명자는 언년이의 다섯째 딸이었다. 명자는 이제 제법 잘 걸어다닐 즈음에 소아마비에 걸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걸어다니던 아이가 갑자기 힘없이 주저앉아 버리니 언년이는 눈이 뒤집혔다. 아이를 업고 이곳 저곳을 다닌 결과 한 한의원에서 소아마비라는 판정을 내렸다. 집에서 한의원까지는 20리가 넘는 길. 언년이는 치료를 위해 명자를 업고 그 길을 걸었다. 언년이는 마음이 아파서 길 중간 언덕에 앉아 섦게 울었다. 그 시절 아이들은 쉽게 아프고 쉽게 죽었다.
한의원에서는 환약을 주며 딱 열알까지 먹이되 그 이상 먹이면 머리가 커지니 주의하라고 당부하였다. 언년의 지극정성으로 명자는 다시 잘 걷게 되었다. 뛰면 다리를 절뚝이는게 보이긴 하지만 그냥 봐서는 명자의 소아마비를 알 수 없다. 같은 동네의 다른 집 아이도 소아마비에 걸려서 똑같은 약을 썼지만 그 아이는 명자만큼 회복되지는 못했다.

언년은 다섯의 딸 뒤에 내리 연이어 두 아들을 낳았다. 이제 그만 낳아도 될 것을 제대로 된 피임법이 없던 시절이라 언년은 다시 임신을 하였다. 하지만 달이 차고 기울어도 아이는 나올 생각을 안하고 어느 날 시작된 하혈에 언년은 숨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당시엔 아이 낳다 죽는 이가 허다했다. 결국 미군의 차를 얻어타고 도립병원으로 향한 언년은 아이를 낳으려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시절의 병원은 환자식이 제공되지도 별 다른 비품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병원에서 머물려면 세간을 싸들고 와야했다. 그러나 일 나가야 하는 남편과 학교 가야하는 아이들의 밥을 챙길 걱정에 언년은 병원에 오래 머물러야만 하는 수술을 거부했고, 어떻게든 본인의 힘으로 아이를 낳겠다고 선언, 숨이 넘어가는 순간을 몇 번이나 이겨내고 결국 스스로 아이를 낳아내었다. 그러나 아이가 뱃속에서 너무 자란 상태였기에 병원에서는 아기를 며칠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지만 역시 언년은 식구들 끼니 걱정에 서둘러 아기를 안고 병원을 나온다. 상황을 모르는 동네 사람들은 길 높은 언덕에 서서 언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길 끝에서 하얀 바탕에 빨간색 십자가가 그려진 지프자가 동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통 그런 차는 시신을 운구하는 차이기 때문에 동네 아낙들은 언년의 아이들을 하나씩 붙잡고 울기 시작했다. 집 앞에 당도한 지프차의 뒷문이 열리고 아기를 안은 언년이 집에 걸어내려섰다. 언년의 아이들은 순간 지옥과 천국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새로 태어난 아기의 눈망울은 크고 똘망똘망했다. 방에 아기를 뉘이자 언년의 7남매는 순식간에 아기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제 겨우 되었다며 한 쪽에서 숨 고르며 누워있는 언년에게 둘째 춘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기 얼굴이 이상해. 곁에 있던 아낙들이 아기의 얼굴을 확인하곤 언년의 눈을 가렸다.
아기는 절명했다. 너무 크게 태어난 탓에 병원에 두고 경과를 지켜봤어야 했는데 그냥 집으로 데려온 것이 불찰이었다. 아기는 흰 천에 싸여 윗목에 놓였다. 곧이어 마을의 어른이 아기를 지고 산 언덕에 묻었다. 세살바기인 막내 남동생은 아기를 보낼 수 없다고 산무덤 주변을 데굴데굴 구르며 울었다.

언년은 강골이었다. 겨울에도 추위를 모르고 맨발로 다닐 정도였다. 언년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1.4 후퇴를 모두 겪어내며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그런 그녀에게조차도 일곱 남매의 끼니를 거르지 않고 키워내는건 부부에게 잔인할 정도로 고된 일이었다. 그 당시 쌀밥을 먹지 못해 밥이 되지 못하는 여러가지 것들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흔했는데도 불구, 언년의 아이들은 삼시 세끼는 밥을 챙겨 먹고 밀가루나 고구마는 간식으로만 먹었다. 가난했지만 일곱 남매의 입이 비는 순간은 없었다. 그만큼 부지런히 부부는 항아리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팔았다.

어제 언년이 우리집에 다녀갔다. 사 년전 파주에 묻은 남편을 보러가기 위해서다.
언년의 남편인 영택이 죽던 날에 내 어머니이자 언년이의 넷째딸인 애자는 ‘아버지 수고하셨어요’ 이 한 마디만 외치여 울부짖었다.
난 이제사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자전거 여행 –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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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3. 밀라노

자전거를 타고 어디까지 갈까나. 김훈은 차도 들어서지 못하는 곳을 자전거 한 대로 살뜰히 누비면서 우리나라 산천초목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자전거를 타고 도로도 제대로 나가지 못하는 나에게는 그가 만들어내는 바퀴 자국의 행보가 놀라울 뿐이다. 그는 참 많이도 다닌다. 가깝게는 여의도, 암사동에서부터 멀게는 안면도, 만경강, 화계사, 선암사, 하회 마을, 소백산, 남해안까지…… 그가 굴러가는 행적은 한반도를 자유롭게 젓는 하나의 긴 흐름이 되고, 이에 그와 그의 자전거 ‘풍륜’은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원래부터 흠모하던 작가였다. 글이 쉬우면 쉬운대로,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읽을 때마다 내게 큰 울림을 주는 그이다. 항상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그의 문학적 깊이에 놀라곤 하지만 특히 ‘자전거 여행’에서는 그의 기자 시절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인터뷰들이 그것 나름대로 또 하나의 세계를 내게 열어준다. 그가 만난 사람들, 그가 나눈 이야기 속에는 나 같은 갓내기로서는 감히 물어볼 수도, 파악할 수도 없는 켜켜한 삶이 묻어 있고 김훈은 이를 알뜰하게 건져 올려 세련되게 다듬는다. 때로는 두렁에 바퀴를 멈추고 말을 건네보기도 하고 때로는 그답게 말술의 밤을 보내며 노래처럼 구성진 촌부의 삶을 듣고 온다. 그가 아니었으면 진도 소포리 노래방의 지도자 한남례씨의 이야기는 없었을 것이다.
책 제목은 ‘자전거 여행’인데 사실 자전거에 대한 얘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책머리에 잠깐 그의 늙은 자전거의 퇴역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새 자전거 할부값을 위해 책 좀 사달라는 간곡한(?) 몇 줄의 문장이 다이다. 책 본문을 보아도 자전거로만 다니는 여행의 어려움에 대한 한탄은 찾아볼 수 없다. 쉰이 넘은 나이로 오로지 두 다리에만 의지하여 산을 타고 고개를 넘고 바다를 끼고 도는 여정이 절대로 여의치 않음에도 그는 그저 슬프도록 아름다운 우리 국토와 그 국토에 발붙이고 사는 이들의 고됨을 담담히 풀어낼 뿐이다. 자전거 수리법, 자전거를 타는 자세, 자전거 가격 등 자전거에 대한 정보를 기대했다면 필히 실망하리라. 그는 그저 그가 보았던 꽃의 비애, 흙의 몽상, 풀의 음악, 색의 리듬, 그 위에 엉기는 계절의 기운을 때로는 예민한 선묘로, 때로는 찍어내는 붓질로 다채롭게 그려내 보일 뿐, 정작 자전거와 그 자신에 대해서는 묵묵하다. 이것이 이 책이 향기로운 이유이다. 김훈은 오로지 감각 수용자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그는 바위 하나를 들여다 보면서도 눈구멍 귓구멍은 물론 땀구멍에 돋아난 털까지 올올이 세우며 있는 힘을 다해 ‘느낀다’. 세월의 흔적을 느끼고 바람의 향기를 느끼며 그 바위가 보아온 것들을 같이 느낀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나 또한 바위가 되고 바람이 된다. 그는 온갖 것들에서 생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고 그렇기에 온갖 것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한 손에 들고 보기에 맞춤한 크기의 책이지만 책이 품은 세상은 방대하다. 어설프게 해외여행 몇 번 다녀본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 나는 사실 서울을 몇 번 떠나본 적조차 없다. 그리하여 나는 빈약하고 빈곤하다. 본디 모자란지라 배우는 일조차 고단하여 긴 시간동안을 틀어박혀 있었더니 결국은 방안퉁수처럼 변해버렸다. 하여 나의 발걸음은 항상 무겁고 마음은 자유롭지 못하다. 기차를 타고 주말에 훌쩍 떠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거늘 내게 있어서 그것은 작은 판타지이다. 실은 이것은 서울을 떠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서울 토박이 특유의 무지함이기도 하다. 티비에서 떠드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국토의 명소를 찾아다니며 소개한다지만 이것은 실로 어쭙잖은 것이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가서 출연진들끼리 웃고 떠들고 노는 것에는 깊이가 없다. 그렇기에 김훈의 글은 더욱 특별하다. 그는 온 몸으로 종일 차륜을 굴리고 난 후 삶의 깊이와 무게를 담아 펜 끝에 힘을 준다. 나는 그의 글을 통하여 가보지 못한 곳을 가고 만나지 못한 사람을 만난다. 나는 군산 염전에도 다녀오고 또 선암사 화장실에도 들렀다 온다. 문경시 관음리 가마터의 고요한 불을 들여다본 후 임실군에 있는 마암 분교 아이들과 엉겨서 논다. 나의 의식은 그의 자전거에 실려 멀리 멀리 떠다닌다. 아, 자작나무 이파리가 이토록 아름답게 빛나는구나. 도마령의 사람들은 겨울 안에 생명을 묻는구나. 자, 어서 가자. 이 계절이 가기 전에 빈 밭에서 소를 길들어야 하나니…… 차륜 닫는 곳마다 마음을 한 점씩 놓고 가자. 이토록 자유로운 것이 자전거가 아니더냐, 김훈은 우리에게 넌지시 이른다.
몸이 먼 곳에서 고국의 산천을 그리는 일은 새롭다. 글이 아름다워 정작으로 마음이 절절하다. 삶에 숨이 막히면 간소히 떠나보자. 사실 이렇게까지 멀리 나올 필요는 없는 거이다.
이 먼 곳에서도 바람은 불고 이파리는 흔들린다. 내음이 비린 강가에도 햇살은 부서지고 사람들은 잘 정리된 길 위로 자전거를 달린다. 나도 한 대 빌려서 따라 달려보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음이다. 그래, 고국에 가면 나도 강변을 따라 달려보자. 나는 자전거를 타고 어디까지 갈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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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원한 주제

봄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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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4 01:13

 

연신내역 3번 출구 계단을 오르는 중에 심심한 허기가 졌다. 사무실에서 나오기 전에 먹은 샌드위치는 귀갓길을 버티지 못한다. 절로 주전부리 생각이 나서 이대로 근처 마트로 발을 돌리려는 찰나, 버스 정류장으로 이어지는 코너길에 펼쳐진 간이 과일가게에서 남은 과일들을 싸게 치우려는 주인의 호객소리가 들렸다. 평소였으면 무시하고 지나쳤을 터인데 어째서 나를 멈추어 세웠을까 싶어 귀기울여 보니 주인이 떨이로 치우려는 과일은 다름아닌 딸기였다.

나는 딸기를 좋아한다. 그것도 오직 제철 생딸기 만이다. 딸기우유, 딸기쨈, 딸기맛 요거트 등등의 딸기 n차 가공품은 취급하지 않는다. 생딸기의 아류작들에는 딸기 특유의 생동감이 없다. 딸기는 내게 있어서 청춘의 맛이다. 매끈매끈 새빨간 유리알같은 윗부분의 과육은 청량하게 달지만 가르마처럼 희푸른 빛을 띄는 꼭지부분은 그 맛이 어설프고 맹맹하다. 찡하게 단 맛과 맛도 아닌 맛이 하나에 존재하는 이 과일을 먹을 때마다 나는 내 20대의 시간들을 생각하며 절로 안으로 깊어지곤 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 이것을 생명의 맛이라 여기기에 나는 아프거나 기운없는 친구들에게 종종 깨끗이 씻은 딸기를 밀폐용기에 담아준다. 딸기 한 알 한 알이 친구 입에 들어가면 그 안에 담긴 봄의 기운이 친구의 지친 내부 구석구석을 잘 어루어 줄 것만 같기 때문이다. 바쁜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이랄까.
생각해보매 요새 딸기가 필요했던 건 바로 나이지 싶다. 만성피로로 입가가 쉴 새 없이 터지고 그 이상으로 마음이 터져나가던 요즈음이다. 집중할 수도, 집중하지도 못하는 어설픈 시간들 사이를 부유하면서 괴로워했다. 옛 것을 내보내지도 못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그 어느 즈음에서 달리다 우는 것이 전부였고, 시간이 갈수록 마음밭만 옴팍 메말라갔기에 잘 영근 딸기 한 알이 이렇게도 간절할 때가 없었던 것이다. 딸기는 마음에도 좋으니까 말이다.

매대에 다가가니 남은 딸기가 다섯 팩이다. 혹여나 곯은 딸기를 밤빛에 속을까 싶어 한 팩을 손에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자니 내 뒤로 아저씨 두 분이 와서 금세 딸기 세 팩을 사간다. 반들반들한 빨간 빛이 백열구 아래서 황홀히 보인 게 나 뿐만은 아니었던가 보다. 나도 뺏길새라 남은 두 팩을 집어 주인에게 건네니 주인이 비닐봉지에 딸기팩을 담으며 내가 와준 덕에 딸기를 다 팔았다 활짝 웃는다. 값을 치르고 받아든 검은 비닐봉지 안에선 달큰한 향이 물씬, 올라온다. 아, 어서 맛을 보고 싶다, 때 맞춰 도착한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자마자 딸기가 담긴 플라스틱 팩의 뚜껑을 열었다. 사선으로 정연하고 빼곡하게 누워있는 딸기들. 내게 있어서 올해 첫 봄딸기다. 한 입 베어물고 눈을 감는다. 허기진 마음이 순식간에 싱그러워진다.

그래, 봄이다. 봄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