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Giraf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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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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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이사 및 인테리어로 요 며칠 긴장상태 였다가 끝나니 잠이 밀려온다. 근래 드물게 정말 오래 잤다.

쉬는 날이면 꼭 무언가를 해야만 인생을 손해보지 않는 기분이었는데,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목표도 긴장도 풀어진 날이면, 알기 어려운 막연한 그리움들이 잉크 방울처럼 번진다.

오래 산 것 같기도,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한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본다.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기엔 난 아직도 스스로 뒤죽박죽하다.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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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및 체중 유지한다고 위와 같은 저녁식사를 시작한지도 어언 1년이 다 되어간다. 초반에는 매일 저녁을 저 닭가슴살 도시락만 먹었는데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7일 중 2일은 저 닭가슴살 도시락을, 2일은 그냥 닭가슴살만 먹고, 나머지 3일은 일반식을 먹거나 대충 때우거나 그러고 있다. 조금 질려서 초반만큼 열심히 먹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체중유지 효과는 확실하다. 그리고 닭가슴살 만큼이나 내가 자주 먹는 게 있는데 그게 뭐냐면

생라면 뿌신거… ㅋㅋㅋㅋ 그것도 진라면 컵라면, 육개장 사발면만 먹는다.
하나 뿌시면 2일 먹는다.
뭔가 아재스럽긴 한데,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끓인 라면보다 생라면을 좋아했었다.
요새도 저녁에 맵고 짠 게 땡길 때면 그냥 생라면 하나 뿌셔 먹는다. 과자 먹는 느낌도 나고 매운 거 먹으니 스트레스도 조금 풀린다. 2일에 나눠서 먹으면 살도 별로 안 찐다(흑흑).

방금도 하나 뿌셔먹음…ㅋㅋㅋ

배부르다. 이제 산책 가야지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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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집중 안 하고 노트나 교과서 귀퉁이에 낙서하는 건 초등학교 때부터 해 온 내 유구한 버릇이다. 이번에 본가에서 책장 정리하는 김에 대학 수업 노트들을 들춰봤더니 재미있는 낙서들이 있어서 몇 개 가져와 봤다.

무슨 수업 때였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옆에 써져있는 걸 보니 아마 ‘예술과 과학’ 이었던듯..)
아무튼 프랑켄슈타인.

인류학 수업 들었을 때 했던 낙서. 제일 위에는 내가 당시에 들고 다니던 SONY MP3. 그 밑에는 누구 다리인지 모르겠다. 제일 아래는 자동차 디자인 스케치 연습.

백명진 교수님…ㅋㅋㅋ 어지간히 듣기 싫었던 수업.

편집 디자인 수업 때 그 공간 안에 있었던 선생님, 선배님, 후배님 등등이 다 있네.

뭔가 세이렌 같은 걸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정보 디자인 수업? 이었던 듯.

야하거나 섹시하거나, 둘 다 좋다.
무슨 수업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이건 아마 공대 수업 듣다가 그렸던 거 같다.
그냥 대충 만화로 끄적이려 했는데
그리다보니 삘 받아서 실사로…

정돈된 선 말고 이런 구불구불한 선도 한 번 써보고 싶었던 것 같다. 수업은 음.. 음악 얘기가 나오긴 하지만 왠지 김민수 교수님 수업이었을 거 같다.

아마 수업시간에 집에 가서 자고 싶은 마음을 그렸나 보다. 저 선은 고등학교 때 크로키 할 때 주로 썼던 선이다.

아마 더 뒤져보면 많이 나올 것이다. 기억하기로는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도 낙서가 빼곡… (종이랑 연필만 있으면 뭐라도 자꾸 그리게 되는 본능이 있다)

Summer Va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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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 우리의 우정이 벌써 4년을 향해 간다. 우리 인생 전체를 봤을 때는 그닥 긴 시간은 아닌데도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편안해.

너가 차려운 식사, 너가 틀어준 음악, 너의 웃음소리, 너의 얼굴 그 모두가 내 마음을 탁 풀리게 해. 그래서 너가 나를 쉬게 해.

닮고 싶은 센스와 세련된 취향. 올곧은 심성. 내 철없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는 너를 알게 되어서 정말 행운이야. 힘든 순간을 슬기롭게 이겨낸 후 마음이 조금 더 자란 상태로 다시 마주한 너와 나.

그렇게 새벽 4시의 떡볶이. 늦은 아침의 커피와 시리얼. 두 팔 가득히 안고 온 향기로운 생화와 우리의 짧은 여름방학.

밤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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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만 걸으려 했는데 1시간이나 걸어버렸다. 요새 밤공기도 좋고 시원해서 걷다 보면 절로 흥이 나고 그러다보면 생각보다 오래 걷게 된다.

조금 답답하고 머리가 복잡했던 것도, 음악 들으면서 열심히 걸으면 좀 나아진다. 낮에는 자리 지키고 모니터만 봐야 해서 알게 모르게 가슴 속에 압박이 쌓인다. 멀리 보고, 푸른 걸 보고, 꽃을 보고, 별을 보고, 그리고 네가 보고 싶다.

그런 그리움들을 비워야 비로소 잠이 든다.

비오는 날 들으면 좋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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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잔잔하게 Carpenters의 Close to you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노래 트랙이 넘어가버렸다… 그래서 올드팝에서 급 재지힙합으로 선회…

위의 Kenichiro Nishihara-Serendipity는 유튭에서 추천해 주는 거 듣다가 운 좋게 얻어 걸렸고, 바로 꽂혔다. 도입부의 색소폰와 랩, 그리고 비슷한 듯 하면서도 묘하게 음색 차이가 나는 여성 보컬 두 명의 어울림이 좋다. Serendipity를 하도 듣다보니 유튭 요 요망한 것이 다른 니시라하의 노래들도 추천해주는데, 곡들마다 다 대박이다. 이전에 업로드한 Embers도 니시하라의 곡.
낮에 일할 때는 Embers를, 밤에 자기 전에는 Serendipity를 듣는다.

두 번째 Re:Plus-It All Turns Out Great는 In Ya Mellow Tone을 통해서 알게 됐는데 도입부의 피아노 선율에 의한 고양감이 뭔가 들을 때마다 매번 짜릿하게 전율이 온다. 노래 전체적으로 드라마틱한 느낌이 있다. 한 때 많이 듣다가 묻어두던 곡인데, 점심 때 자주가는 식당에서 갑자기 이 노래가 나와서 바로 치어버렸다. 그래서 요새 다시 하트 뿅뿅 중.
Re:Plus는 이 외에도 Solitude, Imagine, Goodbye to your love도 좋고, Sam Ock이랑 작업한 One dream, Love도 좋다. 질리지 않도록 여러 개를 돌려가며 듣고 있다. Re:Plus를 많이 좋아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모아놓고 보니 이 정도면 많이 좋아하는 게 맞는 거 같기도.. 음…

이 참에 아예 In Ya Mellow Tone이나 다시 파볼까. 14집까지 나왔다는데.

어서 장마가 왔으면-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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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좋아하던 곡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경험을 해 본 적 있는지?
어벤저스 엔드게임 덕에 요새 한창 마블 시리즈를 정주행하다가 가오갤에서 다시 마주친 Marvin Gaye & Tammi Terrell의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마빈게이 & 태미테럴의 원곡도 상큼하고 발랄하지만 그래도 이 곡을 처음 알게된 곳은 영화 Sister act 2였다.

이 영화는 1993년도에 제작이 되었는데 나도 아주 어릴 적에 본 영화라 기억이 듬성듬성하면서도, 엔딩곡이었던 Ain’t No Mountain High Enough는 아주 멋지게 각인되어 있다.
영화 전체적으로도 감동과 깨발랄이 넘치는 지라 최근에 다시 찾아봤다 이 영화. 그리고…

<문제아 조련사 우피 골드버그>
<겁내 말 안 듣게 생긴 애들>
<핵간지폭풍 대단원의 Joyful, Joyful>

하.. 내가 이동진 만큼 영화평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면 참 좋겠다 ㅠㅠ 내가 받은 감동을 평면적이고 식상한 몇 가지 단어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쉽다. 대충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미국의 변두리 슬럼가에서 폐교위기에 처한 카톨릭 고등학교를 가짜수녀 우피골드버그의 지도 하에 결성된 문제아 합창단이 살려낸다는, 살면서 몇 번은 마주쳐 본 흔한 스토리라인 이다. 그치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소울 터지는 음악성이 핵간지이고 그게 이 영화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주인공 ‘리타’ 역을 맡은 여학생이 아주 예쁜데다가 랩/노래 둘 다 미쳤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Lauryn Hill이라고 하는 유명 가수더라…)

암튼, 다시 노래로 돌아가서, 영화 엔딩 크레딧에서 출연진 전원이 함께 춤추며 부르는 Ain’t No Mountain High Enough는 보는 사람을 눈물날만큼 행복하게 만든다. 합창단 로브를 벗어던지며 자유롭게 춤추는 아이들의 발랄함도 발랄함이지만 이 노래의 가사가 상대를 향한 절대적인 사랑과 맹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Now If you need me call me
no matter where you are
no matter how far (don’t worry baby)
just call my name
I’ll be there in a hurry
you don’t have to worry

Cause baby there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Ain’t no valley low enough
Ain’t no river wide enough
To keep me from getting to you babe

Remember the day
I set you free
I told you you could always count on me darling
From that day on
I made a vow
I’ll be there when you want me
some way somehow

Cause baby there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Ain’t no valley low enough
Ain’t no river wide enough
To keep me from getting to you babe

No wind,
No rain

Or winters cold
Can’t stop me baby
cause you are my beau
(if you’re ever in trouble
I’ll be there on the double
just send for me)
ooo baby

My love is alive
Deep down in my heart
Although we are miles apart

If you ever need a helping hand
I’ll be there on the double
just as fast as I can

찬찬히 잘 읽어보면 사랑도 이런 사랑이 없다. 때문에 이 음악은 종종 종교적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역시 그래도 사랑꾼의 사랑가로 쓰일 때가 가장 멋지다. 정말 진심을 다해 지켜주고 아껴주고 싶은 그런 사람에게 간절함을 담아 부를 수 있는 노래.

영상은 화질이 다소 좋지 않더라도(너무 옛날 영화라…) 시스터액트2 엔딩 크레딧 버전으로 가지고 왔다. 우피 골드버그 혼자서 핫블루 컬러의 옷을 입고 있는데, 출연진들의 무채색 의상과 대비되면서도 우피 골드버그가 영화 속 모두의 리더 역할을 하는 의미와도 잘 맞아떨어져서 보기에 흡족하고 좋다.
이어서 나오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A Deeper Love 도 정말 좋으니 같이 들어보시길.

최근 인상 깊은 만화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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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만화란 만화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워낙 좋아했고, 지금도 힐링은 무조건 웹툰으로 하고 있다. 일 말고 내가 무슨 활동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대충 음악듣기>만화보기>집안일하기> 운동하기>기타(본가방문, 쇼핑, 친구 만나기 등) 순인 것 같다. 아직 스스로 안정화가 덜 되어있다 보니 생활 반경을 크게 벗어나 에너지가 많이 드는 여타 활동을 못한 지 수 년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게 몇 개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지나도 부담스럽지 않게 곁에 있어주는 건 만화와 음악 뿐인 것 같다.

한국 웹툰도 좋은 게 많고 리뷰할 것들이 많지만 오늘은 훈훈한 병맛 일본만화 2개를 소개하려고 한다.

<미기와 다리 by 사노 나미>

‘사카모토입니다만?’으로 유명한 사노 나미의 신작 ‘미기와 다리’이다.
대충 스토리를 설명하자면, 미기와 다리는 13살 일란성 쌍둥이이며,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고아원에서 살다가 한 부유한 노부부에게 입양되어 마치 1명의 자식인 것 처럼 둘이 번갈아 행동하며 살게 된다. 이들의 목적은 어머니를 살해한 살해범을 찾아내는 것으로, 고아 쌍둥이의 현실성을 가장한 비현실적인 생존기라 보시면 되겠다.
표지 이미지만 봐서는 이토 준지 삘나는 호러물이 연상되지만 까보고 나면 진지한 병맛 만화이다. 개그 포인트는 주로 쌍둥이 2명의 쓸데없이 진지한 캐릭터성에서 오며(하지만 그래봤자 13살), 상황상 2명이서 1명(작중 이름 히토리)의 역할을 해야하는 무리수(애기들이 정말로 정말로 많이 무리한다…)에 또 다른 포인트가 있다.
미기와 다리는 엄마의 살해범을 찾아내기 위해 제딴에는 무척 독기를 뿜고 있지만 사실은 가족의 사랑이 필요한 어린 아이들인지라 종종 가족애가 잘 표현되는 일화가 나오면 흐뭇하다.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성도 좋아서 개성넘치는 노부부의 살갑고도 엄한 애정도 보기 좋다. 아마 노부부는 히토리가 사실은 2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행복이 2배’ 라고 외칠 이들이다.
극화체 작화가 작가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개그성을 잘 살려주는 작품이다.

<바투키 by 사코 토시오>

다음은 ‘도박마’로 유명한 사코 토시오의 ‘바투키’이다.
이 만화의 주제는 ‘카포에라’이며 나는 카포에라에 아무 관심이 없음을 밝힌다…
이 만화를 읽게 된 계기는 초반 그림체가 기괴해서(…)이다. 명색이 여자애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못생기게 그려놨었는데, 작가가 원래 작화실력이 꽤 좋은 편임에도 여자아이는 그리기 버거웠나보다…
스토리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주인공 이치리 산죠는 부모의 과보호 아래서 자라고 있었는데 사실 그녀는 브라질 갱단 ‘깃발’의 보스의 딸이며 지금 같이 사는 부모는 실은 상대 갱단 ‘창’의 조직원들이었다. 이치리가 아기 때부터 이치리를 인질로 삼으며 같이 살아온 가짜부모는 시간이 갈수록 이치리에게 정이 들어 ‘창’으로부터 도망쳐 다 같이 조용히 숨어살기로 결심한다. 부모가 이치리를 과보호 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치리가 중학생이 되던 해에 결국 ‘창’의 조직원에게 발각이 되어 부모는 보복으로 납치당하고 이치리는 혼자 남겨지게 된다. 부모를 납치한 ‘창’의 조직원 BJ는 이치리에게 몇 년 후에 있을 갱단 ‘깃발’의 상속싸움에서 이겨서 돈을 나눠줘야지만 부모를 풀어주겠다고 협박을 하고 이에 이치리는 카포에라 맹훈련에 들어가게 된다는… 복잡다단한 내용이다.
일본의 평범한 10대 여자애가 사실은 브라질 갱단의 숨겨진 상속자이며 카포에라를 통해 강자들을 무찌르고 다니게 된다는 스토리는 참으로 비현실적이지만… 작화나 주변인물들이 너무 심오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보고 있다.
처음에는 읽기 좀 어려웠는데 좀 익숙해지고 나니 작가가 원래 그런것마냥 끼워넣는 병맛들이 꽤나 재밌다. 저 위의 두번째 짤 처럼 손가락욕(…)을 너무 진지하고 멋지게 그려놓음과 동시에, 그에 놀라는 인물의 모습도 너무 진지해서… 뭐가 병맛이고 뭐가 아닌지 구분이 잘 안 된달까…
그래도 이 만화 덕분에 ‘오브리가도’가 무슨 뜻인지 알게됐다! Queen의 Rio 공연 중 관중들의 떼창 끝에 프레디가 ‘오브리가도~’라고 외치길래 항상 이게 뭔 말이지 싶었는데, 포르투갈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뜻이랜다 ㅎㅎ

이게 뭐라고 쓰는데 2시간이나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뭔가 행복해지는 기분이 드는 만화들이다. ‘멋지다 마사루’나 ‘오늘부터 우리는’ 류의 고전 병맛만화들은 최소한 컷마다 병맛 안병맛이 구분되는 흐름이 있는데, 위의 작품들은 그런 거 없이 진지하게 보고나니 병맛이더라 의 흐름인지라 어디서부터 진지고 어디서부터 병맛인지 경계를 알기 어려운 작품들이고, 이게 현대의 병맛인가 싶다.

한 컷 한 컷 열정을 다해 그려넣는 위 두 작가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나도 나중에는 멋진 병맛만화를 그려보고 싶다.

논리적인 사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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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하려던 얘기보다 길어져서 1,2로 나눈다.

고생담을 길게 쓰고 싶지는 않다. 이정훈 대표와 2016년 1월부터 함께 했으니 이제 햇수로 4년째이다. 그 간에 있었던 일을 간략히 축약하자면, 자의식이 지구 뿌시는 수준인 주인공 김기린은 이정훈이라는 무시무시한 객관화 알고리즘 대마왕을 만나게 되고 그를 쓰러뜨리기 위해(?) 수 백번을 맞붙게 되는데 번번이 통렬하게 패배하고 만다. 밤마다 패배의 이유를 곱씹고 또 곱씹다가 우리의 주인공 김기린은 어떤 깨달음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것은 본인의 논리적, 객관적, 전략적 사고의 부재(아예 없었으니 공백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였다. 어디가서 좋은 스승이라도 만나 훈련하고 오고 싶은 심정의 김기린이었으나 스타트업은 하루하루가 명줄이 남다르므로 퇴사하지 않고서야 그런 여유따윈 가질 수 없는 김기린이었다. 그래서 김기린은 매일 밤마다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낱낱이 적어서 다시 대마왕에게 도전하고 깨지고 도전하고 깨짐을 반복하여 그렇게 꼬박 3년을 보내고 나니 실은 본인이 찾던 참스승이 그 대마왕이었더라(동화 파랑새 스타일로 마무리해본다).

나는 이 경험으로 인해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Creative 방법론’에 대해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논리, 체계, 순서, 합의, 확인] – 그동안 창작에서 등한시하던 이 단어들이 더 의미있고 적합한 창작을 하게 해주는 도구라는 것을 이대표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알게 되었달까.

논리적 사고에는 여러 장점이 있지만 내가 깨달은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1) 문제의 원인(핵심)을 찾아내는데 유용하다는 것
2) 타인을 설득하는 데에 유용하다는 것

이다. 이 두 개는 내가 그동안 갖추지 못한 탓에 오랜 시간 헤매고 괴로웠던지라 이 Set이 머리 속에서 엉기어 (가늘게나마) 길로 존재하게 된 지금은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하루하루를 다르게 살게하는 작은 힘이 되어준다 (그치만 나이 들어 시냅스 새로 뚫는 건 정말 못할 짓… ㅠ)

글에 다 담지 못한 TMI 스러운 디테일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은 다른 기회에 다른 주제로 풀어보려고 한다. 다음 목표는 사고가 튼튼하면서도 부드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요새는 되도록 ‘듣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 요 얘기는 또 나중에…

논리적인 사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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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내가 논리적인 사고를 아주 조금이나마 갖추게 된 동기와 경과, 그리고 그 의미를 기록하는 글이다.

난 사실 논리보다는 꿈과 상상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몽상을 풀어내며 30년 이상을 살아온 지라, ‘논리적 사고’라는 Mind Set을 갖추게 되기까지 뇌주름을 수 없이 구겼다가 피는(…) 고통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항상 만화와 책을 끼고 살며 경계없는 상상을 그림과 글로 풀어내며 사는 게 일상이었고 그게 인생 최대의 가치였었다. 세상을 항상 다른 시선으로 보고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창작자의 의무라고 여겼기에, 오직 직관적인 감각을 훈련하는 것에 애를 썼다. 그렇게 수도 없이 그리고 또 그렸던 이유는 보는 이의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감각을 통해 그 마음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20살 때 친구가 그려준 내 정신세계…>

근데 어느 순간에 내가 세상에 드는 의문들이 내 방식으로는 풀리지 않는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걸 처음 경험했던 것이 첫회사 TOROOC에서였다. 나는 토룩에서 ‘생명체 같은 로봇’을 만들기 위해 ‘사랑스러운 로봇의 외형’과 ‘유저를 정서적으로 로봇에 Lock-In 시킬 수 있는 유저-로봇 간의 UX/UI’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획안과 연구 결과를 대표에게 제시할 때마다 생산성 있는 토론으로 이어나가기가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애정을 쏟아부어 버텼고, 그렇게 3년을 지내고 나니 내 마음에 병이 왔다. TOROOC을 퇴사하게 된 이유에는 사실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표의 불완전한 리더십과 나의 비논리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불러일으킨 과도한 스트레스가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당시에는 막연하게 토룩의 대표와 나는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며 퇴사를 결정했으나, 이후 지금의 이정훈 대표를 만나 열정팩토리에 합류하면서 나는 내 사고방식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마주하게 된다.

지금의 이정훈 대표는 ‘살아있는 알고리즘’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나름 공대에서 수업도 듣고 로봇대학원에서 인턴도 했지만 이정훈 대표 같은 사람을 겪은 건 처음이었다. 내가 ‘주관’의 극단이었다면 이정훈 대표는 ‘객관’의 극단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 이대표보다 더 객관적인 사람이 존재하긴 하겠지만 이미 나와 이대표의 거리도 충분히 남극과 북극 정도다.

서로 극단에 서있기에 서로 함께했을 시에 가지게 될 크나큰 장점이 있었지만 그만큼 맞붙었을 때의 파괴력도 상상초월이었다.

힘내자 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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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걸어온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을 믿자.

그리고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부딪혀온 너 자신의 노력을 믿자.

후회없는 판단을 위해 지샜던 밤과 눈물을 믿자.

너가 무엇이 되든 용기를 잃지 말자.

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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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과 내 마음에 좀 더 당당해지고 상처를 두려워하지 말자.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게 먼저이고, 그 다음은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다. 그래야 편해진다.

1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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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출시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갈긴다. 스스로 세상의 먼지나 다를 바 없다는 걸 알면서도-어찌되었건 삶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매일 매일 정도를 걸으며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그런 삶엔 즐거움도 있었도, 또 어쩔 수 없는 후회들도 묻어있다. 결국 그 간의 내 모든 행보가 이 시작에 집중되어 있는 지금, 기대되기도… 한편으로는 부담감에 답답하기도 하다.

이렇게 자의식에 허우적거릴 시간 보다는 한 번이라도 회사 생각을 더 하고, 또 서비스를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어느 새 내 전부를 먹어버린 ‘일’이란 존재에서 이제는 좀 빠져나와 ‘여유’를 가지고 싶다는 양가적인 감정 사이에서 요새 괴롭다. 아직도 스스로 너무 모자란 것 같아서, 시간은 빠르게 녹아 없어지는데 성취는 더딘 것 같아서, 이러다 내 젊음이 다 사라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자꾸 마음을 검게 검게 먹어온다. 철이 너무 늦게 드느라 귀중한 시간을 게으르게 쓴 형벌인걸까. 그래서 더 집중하고 더 열심히 하는데도 정작으로 허탈함만 깊어진다. 답인듯 답이 아닌듯 그 어느 길 가운데에 마음이 눌어붙은 기분이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니 요새 확실히 멘탈이 좋지 않은 듯 하다. 강하지도 않은 내가 강한 척하려니 더 힘들다. 어릴 땐 부담이 무섭지 않았는데, 철들고 나니 무섭다.

그래도, 살고는 봐야지. 요새 아무 것도 위로가 되지 않지만 그나마 노래 몇 곡이 나를 근근히 버티게 한다. 감사해요 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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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고향이지만 밖에 나와 산 지 4년째 다.  부모님께 독립하는 것이 어릴 적부터 소원이기도 했고, 나이 찬 자식이 부모님과 부대끼기도 힘들어서다. 그래도 2~3주에 한 번은 꼬박꼬박 집에 들러 얼굴을 비춘다. 

살가운 딸은 아니었다. 사실 무뚝뚝하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 극도로 절약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왔기에 미의식이 나이에 맞지 않았던 건방진 꼬마는 초라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거기에 집안 공기를 불안하고 예민하게 만드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동안 성격이 점점 내성적이고 자신감이 없어졌다.

왜 우리 집은 다른 집들처럼 대화도 많지 않고 웃지도 않는지, 돈이 생겨도 쓸 줄도 모르는지, 아빠는 세상만사에 뭐가 그리 불만이 많아서 다른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지 등등의 것들이 싫었다. 항상 그 분위기에 눌려 있었던 같았다.
하지만 대학에 가고 스타트업을 하면서 내게 조금씩 변화가 왔고, 잘은 모르겠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과의 관계를 몇 발자국 떨어져서 보는 시각이 내게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밖에 홀로 나와 살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와 힘이 내게 생겼고, 나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고 피하던 존재인 아버지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부딪힐 수 있었다. 그렇게 두려움을 걷어내고 나니 아버지의 고단함과 외로움이 보였고, 오랜 시간 그 옆에서 힘들었음에도 어쩌질 못하고 참고만 계셨던 어머니의 마음도 보였다.
컨트롤이 안 될 정도로 제멋대로인 데다가 철없는 내 언행에 상처를 많이 받으셨음에도, 갖은 힘을 다해 욕심많은 딸의 원하는 바를 모두 들어주셨던 두 분, 내 부모님.

지금도 딱히 애교있는 딸은 아니고 결혼하라고 잔소리하시면 부담감에 도망가버리는 딸이지만, 예전보다 부모님의 말을 잘 듣고 사려깊어지려 노력을 하고 있다. 사실 부모님이 바라시는 건 내가 그 분들께 무언가를 해드리기 보다는, 내가 사소한 결정이라도 부모님과 같이 논의하고 그 생각을 깊이 존중해드리는 것이겠지… 스스로의 생각에 갇혀 멋대로 치달아버리는 딸이 그 분들께 얼마나 상처였을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는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집에 갈 때마다 열심히 슈돌을 보며 남의 애기 재롱에 즐거워 하시는 부모님 얼굴보기가 여간 죄송하고 부담되는 게 아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따뜻한 한끼에, 아버지가 수줍게 챙겨주시는 감기약에, 오빠가 만들어주는 달달한 스무디에 내가 참으로 세상에 이런 사랑을 받고 있구나 하는 감사함으로 자취방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것이 아무리 내가 울며 지치고 힘들어도 다시 봄날의 물오른 가지처럼 생을 뻗어나가게 해주는 가족의 굵은 뿌리이다.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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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감정적이고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서툴다는 걸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혼자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하고 겁이 많은 것에 대해서도 말이다. 나는 컨트롤 할 수 없는 내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했고 감정이 이끄는 방향 또한 신뢰할 수 없었다. 나는 내 감정이 두려웠다. 해서 이를 강력하게 통제하는 이성과 규율을 스스로에게 부여하여 내 모든 행동의 키를 그들에게 쥐어주었다. 그 결과 내 감정은 움츠러들다못해 점점 작아져 도저히 그게 어디로 갔는지 찾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고, 내 감정을 나조차도 무시하다보니 내 존재 자체가 쪼그라들어 무너지게 되었다.

나는 내 감정을 그 순간에 솔직하게 내보이는 법을 모른다. 감정을 아끼고 튼튼하게 만들기 보다는 짓누르고 억누르는 법을 택한 결과이다. 하지만 이것은 나를 소심하고 자신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할 뿐 나를 건강하고 매력있게 만들지는 못했다. 

이제부터라도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 감정을 향해 매일 말을 걸고, 그가 내 표면으로 자유롭게 나올 수 있도록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할 듯 하다. 감정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상황에 맞게 잘 다루는 것에도 이성을 정교하게 다듬는 것 이상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많은 후회 끝에 안다.   

 

내가 스타트업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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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스타트업에서 만 6년째이다(참고로 스타트업이란 대규모 자금을 투자받기 전의 신생벤처기업을 이르는 말로, ‘고위험, 고성장, 고수익’의 가능성을 지닌 기술/인터넷 기반 회사이다. 왜 스타트업이 ‘고위험, 고성장, 고수익’ 일 수 밖에 없는지 추후 설명하겠다).

내 주변인들은 내가 왜 스타트업을 이렇게 오래 하는지(ㅠㅠ)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으므로 1)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 일을 하는지 2)이걸 왜 이렇게 오래 할 수 밖에 없는 지 조금 이야기를 풀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나는 미술을 오래 해온 사람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뭔가를 그리는 걸 좋아했고 또 또래들보다 제법 그렸기에 일찍 진로를 정하여 예고에 진학하였다. 예고에서 순수미술 보다는 미술과 사회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디자인에 더 매력을 느꼈고 대입도 디자인과를 선택하여 노력 끝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막상 디자인과에 들어와보니 대학 교육이 지향하는 배움의 방향성을 알 수 없었을 뿐더러 현실성없는 아이디어만 난무하는 상황이었다. 내 성향이 작가성향은 아닌지라 예술적(또는 추상적) 자기표현이 중요한 시각디자인은 선택하지 않고, 보다 구상적이며 다른 분야와 유기적 협력이 중요한 제품디자인을 선택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한 디자인이 보다 현실성을 띄기를 원했다. 여기서 현실성이란 디자이너가 구상한 디자인이 제품/양산화가 가능하고 그 과정에서 크게 변형되지 않고 출시가능함을 이른다. 한마디로 내가 밤새 고민하고 의도한 디자인이 거의 그대로 시장에 출시되기를 바랬다(많은 제품디자인이 설계,양산과정에서 변형이 되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아주 미묘한 변형에도 디자인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쪽으로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던 나는 내 디자인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내 디자인이 현실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서 디자인 내부의 구조와 재료의 특징, 제품 공정들을 익히려 노력했다(구조와 물성을 이해하기 위해 기계과 실습수업을 듣기도 하고, 디자인과 건물 안에 있는 작은 제품모형회사에서 일도 오래 했다).

내 디자인이 정말 좋으면 주변에서 최선을 다해서 맞춰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품 양산화 라는 건 정말 만만찮은 일이고 그 당시에 현실화 되지 못한 디자인들이 어떤 말로는 맞이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나는 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을 해내고 싶었다. 그럴수록 더 공부하려고 애썼다.

4학년이 되자 나도 진로를 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제품디자인으로 갈 수 있는 회사는 전자회사 아니면 자동차회사였다. 자동차는 전혀 내 관심사가 아니었으므로 제외하고, 남는 건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밖에 없었다. 난 회사 생활이라는 게 어떤 건지 경험해보고 싶었기에 과내 프로그램을 통하여 각 회사의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삼성과 엘지, 엘지하우시스 인턴을 거치고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결론은, 나는 일과 나를 분리하지 못하고 어떤 내 일부로 여기기 때문에 이런 태도로 대기업에서 일하다간 버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작업하는 걸 매우 좋아하고 퀄리티 높은 결과물을 위해서 아낌없이 스스로를 갈아넣는(…) 타입의 사람이다. 하지만 기업의 생산물은 나 개인의 것도 아니고 내가 끝까지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나는 나 자신으로 승부하고 싶었고 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기업에 들어가서 시키는 일을 하며 길들여지기 싫었다. 내게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고민점들이 있었다.

-회사에서 일을 배운다손 쳐도 몇 년이면 일정한 프로세스가 잡히고 나머지 인생 동안은 그걸 반복하면서 살게 된다. =>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면서 보내게 될텐데 개인의 발전은 대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회사원으로 살면서 벌 수 있는 기대소득은 한정되어 있다. 또한 사기업을 다니는 이상 50살 이상 다니기 힘들다. => 은퇴 이후에는 개인사업을 고민하게 될 텐데 그 나이 되어서 사업이라는 걸 ‘시도/실패/반복’하느니 차라리 할 거면 젊고 기회 많을 때 일찍 시작하자.

-회사에서 보는 어른들이 내 미래라고 생각하기 싫었다. => 나의 삶의 범위가 결정지어지는 것이 싫었고, 회사에 길들여져 타성에 젖는 것 또한 싫었다.

난 내 성장에 한계가 지어지는 것이 무서웠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안정을 선호하기 마련인데 그 당시 나는 그것이 무척 지루하게 느껴졌고, 왠지 젊을 때 더 많은 걸 경험해보며 외연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일었다. 항상 세상에 존재하는 무한한 지식과 내가 채 이해할 수 없는 수 많은 것들에 마음이 끌렸고, 그래서 학부생때도 내가 갖추지 못한 지식을 위해 타과 수업에 무모하게 도전하곤 했다. 아마 내가 논리/추론을 통해 연역적으로 세상을 파악하기 보다는 감각을 통해 귀납적으로 체화하는 스타일인지라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즉,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ㅠㅠ 류의 인간이라는 말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난 27살 무렵 당시 세 번의 기업인턴을 거치고도 길을 정하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계과 교수님이 주관하시는 로봇 프로젝트에 디자인/기획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고 이 일이 무척 내 마음을 끌었다. 로봇이라니..! 아직 가정용 로봇의 시대는 멀었지만 로봇디자이너는 아직 블루오션처럼 보였고 이 자리를 선점하면 내가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야를 더 들여다보고 싶어서 기계과 로봇 연구실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한 학기가 지나면서 그 연구실 출신 박사님으로부터 스타트업 창업멤버로서의 제안을 받게 된다.

이렇게 호기심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도전정신, 이전에 없던 결과물을 향한 지향, 반복되는 삶에 대한 회피심리, 나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을 통해 부를 이루고 싶은 마음의 결합이 나를 스타트업으로 이끌었다. 그게 내 첫회사인 TOROOC이다.

(다음주에 계속…)

 

하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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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구. 몸이 녹진녹진하다. 원래는 자기 전에 1시간 가량 일하고 자야 하는데 오늘은 좀 어렵다. 스트레칭 하고 났더니 집중력이 영업종료를 알린다 ㅠ ㅠ

홈페이지에 쓰고 싶은 글들이 많은데 시간이 좀 났으면 좋겠다. 어차피 내가 원하여 얻은 바쁨이긴 하지만 내일을 사는 걱정없이 충동적으로 창작에 미치고 그걸 한껏 향유하던, 옛시절이 너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