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딸기

By 2015년 4월 30일 미분류

 

2013.03.14 01:13

 

연신내역 3번 출구 계단을 오르는 중에 심심한 허기가 졌다. 사무실에서 나오기 전에 먹은 샌드위치는 귀갓길을 버티지 못한다. 절로 주전부리 생각이 나서 이대로 근처 마트로 발을 돌리려는 찰나, 버스 정류장으로 이어지는 코너길에 펼쳐진 간이 과일가게에서 남은 과일들을 싸게 치우려는 주인의 호객소리가 들렸다. 평소였으면 무시하고 지나쳤을 터인데 어째서 나를 멈추어 세웠을까 싶어 귀기울여 보니 주인이 떨이로 치우려는 과일은 다름아닌 딸기였다.

나는 딸기를 좋아한다. 그것도 오직 제철 생딸기 만이다. 딸기우유, 딸기쨈, 딸기맛 요거트 등등의 딸기 n차 가공품은 취급하지 않는다. 생딸기의 아류작들에는 딸기 특유의 생동감이 없다. 딸기는 내게 있어서 청춘의 맛이다. 매끈매끈 새빨간 유리알같은 윗부분의 과육은 청량하게 달지만 가르마처럼 희푸른 빛을 띄는 꼭지부분은 그 맛이 어설프고 맹맹하다. 찡하게 단 맛과 맛도 아닌 맛이 하나에 존재하는 이 과일을 먹을 때마다 나는 내 20대의 시간들을 생각하며 절로 안으로 깊어지곤 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 이것을 생명의 맛이라 여기기에 나는 아프거나 기운없는 친구들에게 종종 깨끗이 씻은 딸기를 밀폐용기에 담아준다. 딸기 한 알 한 알이 친구 입에 들어가면 그 안에 담긴 봄의 기운이 친구의 지친 내부 구석구석을 잘 어루어 줄 것만 같기 때문이다. 바쁜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이랄까.
생각해보매 요새 딸기가 필요했던 건 바로 나이지 싶다. 만성피로로 입가가 쉴 새 없이 터지고 그 이상으로 마음이 터져나가던 요즈음이다. 집중할 수도, 집중하지도 못하는 어설픈 시간들 사이를 부유하면서 괴로워했다. 옛 것을 내보내지도 못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그 어느 즈음에서 달리다 우는 것이 전부였고, 시간이 갈수록 마음밭만 옴팍 메말라갔기에 잘 영근 딸기 한 알이 이렇게도 간절할 때가 없었던 것이다. 딸기는 마음에도 좋으니까 말이다.

매대에 다가가니 남은 딸기가 다섯 팩이다. 혹여나 곯은 딸기를 밤빛에 속을까 싶어 한 팩을 손에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자니 내 뒤로 아저씨 두 분이 와서 금세 딸기 세 팩을 사간다. 반들반들한 빨간 빛이 백열구 아래서 황홀히 보인 게 나 뿐만은 아니었던가 보다. 나도 뺏길새라 남은 두 팩을 집어 주인에게 건네니 주인이 비닐봉지에 딸기팩을 담으며 내가 와준 덕에 딸기를 다 팔았다 활짝 웃는다. 값을 치르고 받아든 검은 비닐봉지 안에선 달큰한 향이 물씬, 올라온다. 아, 어서 맛을 보고 싶다, 때 맞춰 도착한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자마자 딸기가 담긴 플라스틱 팩의 뚜껑을 열었다. 사선으로 정연하고 빼곡하게 누워있는 딸기들. 내게 있어서 올해 첫 봄딸기다. 한 입 베어물고 눈을 감는다. 허기진 마음이 순식간에 싱그러워진다.

그래, 봄이다. 봄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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