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 – 김훈

By 2015년 4월 30일 미분류

2011.08.13. 밀라노

자전거를 타고 어디까지 갈까나. 김훈은 차도 들어서지 못하는 곳을 자전거 한 대로 살뜰히 누비면서 우리나라 산천초목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자전거를 타고 도로도 제대로 나가지 못하는 나에게는 그가 만들어내는 바퀴 자국의 행보가 놀라울 뿐이다. 그는 참 많이도 다닌다. 가깝게는 여의도, 암사동에서부터 멀게는 안면도, 만경강, 화계사, 선암사, 하회 마을, 소백산, 남해안까지…… 그가 굴러가는 행적은 한반도를 자유롭게 젓는 하나의 긴 흐름이 되고, 이에 그와 그의 자전거 ‘풍륜’은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원래부터 흠모하던 작가였다. 글이 쉬우면 쉬운대로,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읽을 때마다 내게 큰 울림을 주는 그이다. 항상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그의 문학적 깊이에 놀라곤 하지만 특히 ‘자전거 여행’에서는 그의 기자 시절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인터뷰들이 그것 나름대로 또 하나의 세계를 내게 열어준다. 그가 만난 사람들, 그가 나눈 이야기 속에는 나 같은 갓내기로서는 감히 물어볼 수도, 파악할 수도 없는 켜켜한 삶이 묻어 있고 김훈은 이를 알뜰하게 건져 올려 세련되게 다듬는다. 때로는 두렁에 바퀴를 멈추고 말을 건네보기도 하고 때로는 그답게 말술의 밤을 보내며 노래처럼 구성진 촌부의 삶을 듣고 온다. 그가 아니었으면 진도 소포리 노래방의 지도자 한남례씨의 이야기는 없었을 것이다.
책 제목은 ‘자전거 여행’인데 사실 자전거에 대한 얘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책머리에 잠깐 그의 늙은 자전거의 퇴역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새 자전거 할부값을 위해 책 좀 사달라는 간곡한(?) 몇 줄의 문장이 다이다. 책 본문을 보아도 자전거로만 다니는 여행의 어려움에 대한 한탄은 찾아볼 수 없다. 쉰이 넘은 나이로 오로지 두 다리에만 의지하여 산을 타고 고개를 넘고 바다를 끼고 도는 여정이 절대로 여의치 않음에도 그는 그저 슬프도록 아름다운 우리 국토와 그 국토에 발붙이고 사는 이들의 고됨을 담담히 풀어낼 뿐이다. 자전거 수리법, 자전거를 타는 자세, 자전거 가격 등 자전거에 대한 정보를 기대했다면 필히 실망하리라. 그는 그저 그가 보았던 꽃의 비애, 흙의 몽상, 풀의 음악, 색의 리듬, 그 위에 엉기는 계절의 기운을 때로는 예민한 선묘로, 때로는 찍어내는 붓질로 다채롭게 그려내 보일 뿐, 정작 자전거와 그 자신에 대해서는 묵묵하다. 이것이 이 책이 향기로운 이유이다. 김훈은 오로지 감각 수용자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그는 바위 하나를 들여다 보면서도 눈구멍 귓구멍은 물론 땀구멍에 돋아난 털까지 올올이 세우며 있는 힘을 다해 ‘느낀다’. 세월의 흔적을 느끼고 바람의 향기를 느끼며 그 바위가 보아온 것들을 같이 느낀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나 또한 바위가 되고 바람이 된다. 그는 온갖 것들에서 생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고 그렇기에 온갖 것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한 손에 들고 보기에 맞춤한 크기의 책이지만 책이 품은 세상은 방대하다. 어설프게 해외여행 몇 번 다녀본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 나는 사실 서울을 몇 번 떠나본 적조차 없다. 그리하여 나는 빈약하고 빈곤하다. 본디 모자란지라 배우는 일조차 고단하여 긴 시간동안을 틀어박혀 있었더니 결국은 방안퉁수처럼 변해버렸다. 하여 나의 발걸음은 항상 무겁고 마음은 자유롭지 못하다. 기차를 타고 주말에 훌쩍 떠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거늘 내게 있어서 그것은 작은 판타지이다. 실은 이것은 서울을 떠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서울 토박이 특유의 무지함이기도 하다. 티비에서 떠드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국토의 명소를 찾아다니며 소개한다지만 이것은 실로 어쭙잖은 것이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가서 출연진들끼리 웃고 떠들고 노는 것에는 깊이가 없다. 그렇기에 김훈의 글은 더욱 특별하다. 그는 온 몸으로 종일 차륜을 굴리고 난 후 삶의 깊이와 무게를 담아 펜 끝에 힘을 준다. 나는 그의 글을 통하여 가보지 못한 곳을 가고 만나지 못한 사람을 만난다. 나는 군산 염전에도 다녀오고 또 선암사 화장실에도 들렀다 온다. 문경시 관음리 가마터의 고요한 불을 들여다본 후 임실군에 있는 마암 분교 아이들과 엉겨서 논다. 나의 의식은 그의 자전거에 실려 멀리 멀리 떠다닌다. 아, 자작나무 이파리가 이토록 아름답게 빛나는구나. 도마령의 사람들은 겨울 안에 생명을 묻는구나. 자, 어서 가자. 이 계절이 가기 전에 빈 밭에서 소를 길들어야 하나니…… 차륜 닫는 곳마다 마음을 한 점씩 놓고 가자. 이토록 자유로운 것이 자전거가 아니더냐, 김훈은 우리에게 넌지시 이른다.
몸이 먼 곳에서 고국의 산천을 그리는 일은 새롭다. 글이 아름다워 정작으로 마음이 절절하다. 삶에 숨이 막히면 간소히 떠나보자. 사실 이렇게까지 멀리 나올 필요는 없는 거이다.
이 먼 곳에서도 바람은 불고 이파리는 흔들린다. 내음이 비린 강가에도 햇살은 부서지고 사람들은 잘 정리된 길 위로 자전거를 달린다. 나도 한 대 빌려서 따라 달려보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음이다. 그래, 고국에 가면 나도 강변을 따라 달려보자. 나는 자전거를 타고 어디까지 갈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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