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인 사고1

By 2019년 5월 24일 미분류

이 글은 내가 논리적인 사고를 아주 조금이나마 갖추게 된 동기와 경과, 그리고 그 의미를 기록하는 글이다.

난 사실 논리보다는 꿈과 상상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몽상을 풀어내며 30년 이상을 살아온 지라, ‘논리적 사고’라는 Mind Set을 갖추게 되기까지 뇌주름을 수 없이 구겼다가 피는(…) 고통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항상 만화와 책을 끼고 살며 경계없는 상상을 그림과 글로 풀어내며 사는 게 일상이었고 그게 인생 최대의 가치였었다. 세상을 항상 다른 시선으로 보고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창작자의 의무라고 여겼기에, 오직 직관적인 감각을 훈련하는 것에 애를 썼다. 그렇게 수도 없이 그리고 또 그렸던 이유는 보는 이의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감각을 통해 그 마음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20살 때 친구가 그려준 내 정신세계…>

근데 어느 순간에 내가 세상에 드는 의문들이 내 방식으로는 풀리지 않는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걸 처음 경험했던 것이 첫회사 TOROOC에서였다. 나는 토룩에서 ‘생명체 같은 로봇’을 만들기 위해 ‘사랑스러운 로봇의 외형’과 ‘유저를 정서적으로 로봇에 Lock-In 시킬 수 있는 유저-로봇 간의 UX/UI’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획안과 연구 결과를 대표에게 제시할 때마다 생산성 있는 토론으로 이어나가기가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애정을 쏟아부어 버텼고, 그렇게 3년을 지내고 나니 내 마음에 병이 왔다. TOROOC을 퇴사하게 된 이유에는 사실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표의 불완전한 리더십과 나의 비논리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불러일으킨 과도한 스트레스가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당시에는 막연하게 토룩의 대표와 나는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며 퇴사를 결정했으나, 이후 지금의 이정훈 대표를 만나 열정팩토리에 합류하면서 나는 내 사고방식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마주하게 된다.

지금의 이정훈 대표는 ‘살아있는 알고리즘’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나름 공대에서 수업도 듣고 로봇대학원에서 인턴도 했지만 이정훈 대표 같은 사람을 겪은 건 처음이었다. 내가 ‘주관’의 극단이었다면 이정훈 대표는 ‘객관’의 극단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 이대표보다 더 객관적인 사람이 존재하긴 하겠지만 이미 나와 이대표의 거리도 충분히 남극과 북극 정도다.

서로 극단에 서있기에 서로 함께했을 시에 가지게 될 크나큰 장점이 있었지만 그만큼 맞붙었을 때의 파괴력도 상상초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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