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뛰쳐나왔다. 그냥 이적이 생각났다. 요새 대중들에게는 이적이 ‘다행이다’/’걱정말아요 그대’/’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등의 소프트한 발라더 느낌으로 각인되어 있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이적은 훨씬 훨씬 훨씬… Geek하고 Dark하고 Minor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급식실을 청소하던 당번 고정 멤버가 4~5명 있었다. 뒤섞인 음식 냄새가 금속에도 배어버린 그 급식실 한켠에는 선생님 전용 휴게공간이 있었다. 그 안에는 싸구려 천소파와 줄이 망가진 기타가 있었고, 나는 급식실 청소를 같이 하던 친구들과 그 기타를 엉망으로 치면서 패닉의 ‘왼손잡이’를 목놓아 불렀다.
어쩐지 집에는 패닉 1집 테이프가 있었고 나는 뜻도 모르고 ‘왼손잡이’, ‘달팽이’를 따라 불렀던 그때가 25년 전이다. 즉, 22살 이적의 시작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이적은 그야말로 Outlier였고, 패닉 2집의 이적은 심지어 공포였다 (문자 그대로 공포였는데, 그 이유는 패닉 2집의 커버 일러스트가 진짜 그로테스크하고 무서웠고 노래들도 이와 결이 같았기 때문이다 ㅠ ㅠ)
나는 단 한 번도, ‘좋아하는 가수’로 이적을 먼저 꼽아본 적이 없다. 근데 나는 그냥 평소에, 너무, 자연스럽게, 수시로, 이적을 듣고 있다.
‘눈 녹 듯’/ ‘왼손잡이’/ ‘달팽이’/ ‘로시난테’/ ‘Rain’/ ‘하늘을 달리다’/ ‘뿔’ / ‘숨은그림찾기’ /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기다리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UFO’… 이적을 이렇게나 듣는데 내가 이적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와서 너무 익숙한 탓에 좋아하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 동네 소꿉친구 같은 느낌 – 그래서 그런 거겠지.
그래서 이적이란 사람이 얼마나 대단하고 천재인지도 새삼스레 깨닫는다. 작곡 작사 노래 모두 어떻게 이런 재능이 한 사람에게 있을까 싶어서, 가끔 외모 때문에 방송에서 개그캐로 소비되고 있는 게 너무도 아까울 정도로 정말이지, 정말이지 이적은…
날카롭고 환상적으로 베어 들어오는, 패닉 시절의 노래들.
항상 내 마음의 바닥까지 곧장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