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타트업을 하는 이유

By 2018년 11월 25일 미분류

난 스타트업에서 만 6년째이다(참고로 스타트업이란 대규모 자금을 투자받기 전의 신생벤처기업을 이르는 말로, ‘고위험, 고성장, 고수익’의 가능성을 지닌 기술/인터넷 기반 회사이다. 왜 스타트업이 ‘고위험, 고성장, 고수익’ 일 수 밖에 없는지 추후 설명하겠다).

내 주변인들은 내가 왜 스타트업을 이렇게 오래 하는지(ㅠㅠ)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으므로 1)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 일을 하는지 2)이걸 왜 이렇게 오래 할 수 밖에 없는 지 조금 이야기를 풀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나는 미술을 오래 해온 사람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뭔가를 그리는 걸 좋아했고 또 또래들보다 제법 그렸기에 일찍 진로를 정하여 예고에 진학하였다. 예고에서 순수미술 보다는 미술과 사회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디자인에 더 매력을 느꼈고 대입도 디자인과를 선택하여 노력 끝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막상 디자인과에 들어와보니 대학 교육이 지향하는 배움의 방향성을 알 수 없었을 뿐더러 현실성없는 아이디어만 난무하는 상황이었다. 내 성향이 작가성향은 아닌지라 예술적(또는 추상적) 자기표현이 중요한 시각디자인은 선택하지 않고, 보다 구상적이며 다른 분야와 유기적 협력이 중요한 제품디자인을 선택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한 디자인이 보다 현실성을 띄기를 원했다. 여기서 현실성이란 디자이너가 구상한 디자인이 제품/양산화가 가능하고 그 과정에서 크게 변형되지 않고 출시가능함을 이른다. 한마디로 내가 밤새 고민하고 의도한 디자인이 거의 그대로 시장에 출시되기를 바랬다(많은 제품디자인이 설계,양산과정에서 변형이 되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아주 미묘한 변형에도 디자인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쪽으로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던 나는 내 디자인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내 디자인이 현실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서 디자인 내부의 구조와 재료의 특징, 제품 공정들을 익히려 노력했다(구조와 물성을 이해하기 위해 기계과 실습수업을 듣기도 하고, 디자인과 건물 안에 있는 작은 제품모형회사에서 일도 오래 했다).

내 디자인이 정말 좋으면 주변에서 최선을 다해서 맞춰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품 양산화 라는 건 정말 만만찮은 일이고 그 당시에 현실화 되지 못한 디자인들이 어떤 말로는 맞이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나는 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을 해내고 싶었다. 그럴수록 더 공부하려고 애썼다.

4학년이 되자 나도 진로를 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제품디자인으로 갈 수 있는 회사는 전자회사 아니면 자동차회사였다. 자동차는 전혀 내 관심사가 아니었으므로 제외하고, 남는 건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밖에 없었다. 난 회사 생활이라는 게 어떤 건지 경험해보고 싶었기에 과내 프로그램을 통하여 각 회사의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삼성과 엘지, 엘지하우시스 인턴을 거치고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결론은, 나는 일과 나를 분리하지 못하고 어떤 내 일부로 여기기 때문에 이런 태도로 대기업에서 일하다간 버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작업하는 걸 매우 좋아하고 퀄리티 높은 결과물을 위해서 아낌없이 스스로를 갈아넣는(…) 타입의 사람이다. 하지만 기업의 생산물은 나 개인의 것도 아니고 내가 끝까지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나는 나 자신으로 승부하고 싶었고 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기업에 들어가서 시키는 일을 하며 길들여지기 싫었다. 내게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고민점들이 있었다.

-회사에서 일을 배운다손 쳐도 몇 년이면 일정한 프로세스가 잡히고 나머지 인생 동안은 그걸 반복하면서 살게 된다. =>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면서 보내게 될텐데 개인의 발전은 대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회사원으로 살면서 벌 수 있는 기대소득은 한정되어 있다. 또한 사기업을 다니는 이상 50살 이상 다니기 힘들다. => 은퇴 이후에는 개인사업을 고민하게 될 텐데 그 나이 되어서 사업이라는 걸 ‘시도/실패/반복’하느니 차라리 할 거면 젊고 기회 많을 때 일찍 시작하자.

-회사에서 보는 어른들이 내 미래라고 생각하기 싫었다. => 나의 삶의 범위가 결정지어지는 것이 싫었고, 회사에 길들여져 타성에 젖는 것 또한 싫었다.

난 내 성장에 한계가 지어지는 것이 무서웠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안정을 선호하기 마련인데 그 당시 나는 그것이 무척 지루하게 느껴졌고, 왠지 젊을 때 더 많은 걸 경험해보며 외연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일었다. 항상 세상에 존재하는 무한한 지식과 내가 채 이해할 수 없는 수 많은 것들에 마음이 끌렸고, 그래서 학부생때도 내가 갖추지 못한 지식을 위해 타과 수업에 무모하게 도전하곤 했다. 아마 내가 논리/추론을 통해 연역적으로 세상을 파악하기 보다는 감각을 통해 귀납적으로 체화하는 스타일인지라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즉,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ㅠㅠ 류의 인간이라는 말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난 27살 무렵 당시 세 번의 기업인턴을 거치고도 길을 정하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계과 교수님이 주관하시는 로봇 프로젝트에 디자인/기획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고 이 일이 무척 내 마음을 끌었다. 로봇이라니..! 아직 가정용 로봇의 시대는 멀었지만 로봇디자이너는 아직 블루오션처럼 보였고 이 자리를 선점하면 내가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야를 더 들여다보고 싶어서 기계과 로봇 연구실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한 학기가 지나면서 그 연구실 출신 박사님으로부터 스타트업 창업멤버로서의 제안을 받게 된다.

이렇게 호기심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도전정신, 이전에 없던 결과물을 향한 지향, 반복되는 삶에 대한 회피심리, 나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을 통해 부를 이루고 싶은 마음의 결합이 나를 스타트업으로 이끌었다. 그게 내 첫회사인 TOROOC이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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