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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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본가에서 방정리를 하다가 먼지가 쌓인, 하지만 한 때 무엇보다 내 가까이에서 나를 살게 했던 무기들을 발견했다.

파스텔, 수채화, 콩테, 목탄, 색연필, 아크릴 등등… 와르르 쏟아내리는 재료들을 보니 이 재료들과 씨름하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건식 재료 중에서는 목탄, 습색 재료 중에서는 수채화가 정말 애를 많이 먹였는데 수채화는 바바라 붓이 다 닳고 갈라지도록 칠해댄 끝에 결국 적당한 물의 농도를 내가 원하는 대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목탄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지금 해보라고 해도 자신없다).

그래도 저 녀석들 덕분에 힘들었던 10대를 견뎠다. 그 당시에는 더 나은 미래를 그리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겼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내 생각과 마음을 전달하는 또 다른 언어를 배웠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말을 썩 잘하는 편이 아닌 내가 어렵지 않게 나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부모님은 이제 그림을 그리지 않는 내가 아쉬우신 것 같지만, 결국은 (아마도)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다음에는, 좀 더 즐거운 그림을 그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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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교대 운동장을 걸었다. 일주일에 2~3회는 숨 찰 정도로 걸어줘야 하는데, 겨울밤에 나갔다가 감기올까 겁나서 근래 소홀했다. 근데 어째 바로 몸이 부실해지는 느낌이 들어 주말에 귀찮더라도 채비하고 나왔다. 안경과 마스크도 썼다.

간만에 걸었더니 10분 만에 숨을 용트림처럼 내뿜는다;; 힘들 땐 하늘을 보라지, 뻥 뚫린 교대 운동장 하늘은 의외로 맑고 별도 뜨문뜨문 보였다. 예전에 영월 별마로 천문대에서 겨울의 별자리를 직관했던 기억을 더듬어서 시야에 들어오는 몇 개 안되는 별들과 열심히 맞춰봤다. 별만 보고 걷다보니 40분이 금방 지나가네.

서울, 그것도 강남 한복판에서 별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리운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따뜻함을 안고 집에 돌아왔다. 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이 많은 요즘인데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로 삶을 채워가는 것도 좋겠다

순간의 느낌과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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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느낌과 감정(특히 불안)을 다른 기분이나 취미 컨텐츠 등으로 덮어버리는 걸 조금 자제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아주 집중력이 필요한 업무의 경우에는 어떤 사소한 방해도 허용하지 않지만, 그 외의 가벼운 일들(예를 들어 집안일, 일정 정리 등의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생산적인 일들)은 도무지 빠릿하게 실행되지도 않고, 그 일에만 집중하는 동안 묻어두었던 불안감이 끼어드는 것이 싫다. 그래서 보통은 예능이나 영화 등의 컨텐츠를 틀어서 신경을 분산시킨 후 일에 착수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완벽한 고요를 잘 못 견디는 걸까. 끊임없는 자극과 긴장에 노출되어 있다보니, 혼자 있다 보면 아무것도 없는 그 순간을 잘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감이 심해지는 타입’이라고 스스로를 진단해본다. 그렇다고 실제로 만나기에는 에너지가 많이 드니까 그냥 그 연결되어 있는 감각만 필요한 것 같은데, 이게 그냥 인간의 본능인건지 내 불안증의 일종인건지 잘 구분이 안 선다.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은 흔한 현대인의 현상인걸까. 그걸 딱히 SNS로 푸는 쪽은 아닌지라 요새 유행하는 인스타그램이나 시대 지난 페이스북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혼자 이 공간에 고이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아질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안하고 (스마트폰도 안하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 심연 밑의 질척하게 가라앉아 있던 내가 외면하고 지나쳐온 것 들이 아지랑이처럼 수면 위까지 올라와 속을 엉크러트린다. 이미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니 아마 그 감정의 본질은 후회, 이겠거니. 그럼 내 불안의 근원은 내가 외면해온 후회와 제때 해결하지 못한 자기반성 인걸까? 그런 것들에 잡아먹히는 것이 무서워서 애써 의식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내도록 도와주는 흥미로운 간식(유튜브, 카톡, 웹툰, 스누라이프, 넷플릭스, 때로는 연애 등)들을 끊임없이 집어먹고 있는 꼴이다. 문제에 문제를 덮는 형국이라,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한 시점이다. 근데 어떻게?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면서도 틈틈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그건 역시 나 자신만을 위한 ‘창조’ 행위가 되려나. 일에 들들들 볶이다 보니 내 시간 하나 평안히 가지는 게 힘들었고, 괜히 다른 뭔가를 시도했다가 체력이 소진된다거나 미리 해야 할 업무를 준비하지 못해서 일에 지장이 가게 되는 것이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밸런스 잡는 연습은 계속 하고 있으니, 편안해지는 순간이 오리라 믿고 한 번 시도해보자.

대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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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찾아드는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릴 때는 이런 감정을 나누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른이 되니 다들 어디로 간걸까.

일상에서는 기계처럼 빡빡하게, 다른 생각의 틈 없이 그저 최고의 효율을 내기 위해서만 존재하다가 이렇게 개인시간이 주어지면 정말이지 어쩔 줄 모르겠다. 몸은 너무 피곤한데 정신이 아우성이다. 자연의 리듬에 맡기기엔 이미 틀렸고, 어떻게든 기계적으로 잠들어야 하는데 피곤한 눈을 감아도 묵혀두던 잡념들이 뇌관을 펑펑 터뜨린다.

다들 어디에 있니? 바쁜 삶에 휩쓸려 사라져 버린 추억들아. 닿을 수 없는 인연들아. 소식을 몰라도 다들 어딘가에서 자기 삶을 해내고 있겠지. 우리 어릴 때의 청신했던 그 모습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무척 그리워.

아침에 눈을 뜨면 어차피 다 잊고 나의 레일 위를 정신없이 달려가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쪽지 하나를 남기고 갈께, 차랑.

문제의 원인을 밝히는 일과 이를 해결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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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르다는 것에 대한 최근의 생각.

이것은 기본적으로 ‘현상->근원->해결’ 에 대한 고찰이다. 어릴 때는 세 과정을 나 혼자서 고민하곤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각 과정에서 다른 능력을 요할지도 모른다는 경험을 종종 하곤 한다.

아무래도 서비스를 발전시키다 보면 수많은 불편사항을 접하게 마련이다. 유저들은 본인 시각의 불편사항을 본인의 방식대로 해결해주길 원하지만 여러 사정 상 그렇게 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체적으로 유저는 본인이 겪은 불편한 현상에 대해서만 애기를 하기 때문에 불편의 원인을 다각도로 깊게 파악하여 단순화 시키는 일은 꽤나 분석적인 능력을 요한다.

이 과정을 거쳐서 문제점이 명료해지면 여기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이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각자의 주관이 많이 들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는 작은 개선이라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명료한’ 부분부터 개선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최선이다. 이러다보니 문제점을 밝히는 사람과 해결책을 내는 사람이 상황에 다라 다를 수 (거의 대부분 다른 것 같기도) 있다.

일 하다보면 정말 많은 회의를 하게 된다. 회의의 성격이 뭔지, 구성원 발언의 비중은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각자의 생각이 난무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 또한 상당한 능력이 요구된다.

여기까지 고찰하고 든 생각은, 이런 건 대체 누가 알려주며 다들 어디서 배우는 걸까?

조금 덜 심각하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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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100%의 에너지로 살던 나에게)

최근들어 남과 구분되는 나의 특질이 무엇일까, 궁금해왔다. 대충 평범한 10~20대를 보내면 다들 어렴풋이는 알게되는 것들을 30대인 나는 왜 아직도 모르고 있냐면

– 세상을 주로 책으로 배웠다(책에서 배울 게 많긴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책이 80%)
–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때문에 사람을 불편해한다(심지어 피한다)
– 주로 일을 혼자서 해결하려 한다.
–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 타인으로부터 비판받는 걸 매우 두려워 한다.
– 학습력을 바탕으로 한 잘 훈련된 자신으로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본래의 자연스러운 자신이 나올 기회가 적다.

동일한 상황에서 타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하고 판단해야 나의 자연스러운 특성을 정의할 수 있는데 위의 성향들 때문에 나는 내가 Standard에서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성격이 상당히 급하고 스스로의 문제해결력에 대한 과신의 대환장 콜라보로 인해 중간중간 차분하고 객관적인 논의/판단점을 잡지 못하고 혼자서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고민의 극을 달려 마지막까지 치달아버린다. 이렇게 나온 결론은 너무나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아마 이 성격 때문에 인생에서 가장 많은 손해를 봤던 것 같다. (판단이 좋지 못하지 결과도 좋지 못하고, 급한 성격에 에너지만 쏟아부으니 건강도 안 좋아지는 악순환이랄까)

나와 다른 성격의 똑똑한 동료들과 수 년을 구른 덕분에 판단력은 조금 나아진 것 같지만 성격은 아직 먼 것 같다. 그래서 새해부터는, 조금 느긋하게 사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생각만 먹어서는 변화가 어려운 것 같고, 여러 사람들과 섞이는 상황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보려고 한다. 누가 나랑 잘 맞는지, 나랑 안 맞는지 자연스러운 호흡을 해보려 한다.

그리고 모든 일에 100%의 에너지를 쏟지 않기로! 적당히 신경 끊는 게 모두를 위한 길일 수도 있다. 완벽히 수행하지 못해도 실망하거나 자괴하지 말자. 그런 것조차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거다. 놓을 건 놓고 포기할 건 포기하면서, 그렇게 순응하며 살자.

바라는 대로 가지 않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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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미리 생각하고 그에 맞추기 위해 참 애를 많이 썼는데 인생은 그렇게 살아지지도, 그렇게 살 수도 없다는 것을 요즘 들어 많이 느낀다.
1)오늘 최선을 다해도 미래에 내가 원하는 결과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예전 같으면 상기 1)항에 대해, 비효율적인 결과가 나올 것 같으면 무언가를 하다가도 중도에 관두거나 아니면 아예 시작을 하지 않았지만,
요새 드는 생각은 난 그저 이 운명의 굴레 안에서 결과를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역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사회에서의 내 역할, 일에서의 성공,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일 등 모두)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효율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 최대한 조심하고 신경쓰면서 역사의 관찰자 입장으로 살고 싶었지만 30대 중반까지 살아보니 그 혼돈의 한가운데서 아둥바둥 거리는 1인의 역할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B2C의 최전방에서 치열하게 뚫어나가는 것이 내 역할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참, 시간이 많이도 걸렸구나… 싶다. 예민하고 소심하면서도 쉽게 들뜨고 우울해지는 성격이라 최대한 외부자극을 피하고 싶었는데, 역시 인생은 맘대로 안 되나 보다.

서비스 런칭하느라 작년 9월부터 쉼없이 달려와서 마음 상태가 말이 아니다. 매일 펑펑 울어도 모자를 거 같은데 아침에 눈 뜨면 회사를 위해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이어야 하는 내가 있다. 퇴근 후에는 그 다음 날을 살기 위해 샐러드를 먹고 피곤해도 운동을 하는 내가 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는 쫓기던 하루 속 긴장의 부작용으로 멍하니 현실을 잊어버리는 나, 대체 이 균형은 어느 즈음에서 맞춰질까.

자명한 사실은 어찌되었든 나는 이 생활을 최소한 2년을 더 유지해야 하고, 그 시간 동안 내게 쏟아지는 걱정, 잔소리, 실망, 반대, 혹은 도태의 상황까지도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견디더라도 그 결과가 별로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래도 나를 위한 삶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말고… 항상 습관적으로 내 감정을 무시하고 상황과 타인에 맞추어서만 행동했는데, 아무리 인생의 큰 틀과 방향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더라도 순간순간 나의 감정을 자세하고 꼼꼼하게 들여다보면서 살아야 결과와 상관없이 가장 후회가 적다는 것만, 이 하나만 꼭 쥐고 나아가려 한다.
나는 완벽할 필요도, 누군가에게 완벽하게 보일 필요도 없다. 그저 내 마음 하나에 초점을 맞추어서 삶을 살아가리라.

(내 필요에 의해 상대를 움직이게 하는 일은 대부분 지저분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에 나는 대체로 남의 필요에 의해 움직이면서 고상하고 새침하게 굴기를 원했지만 그것이 장기적으로 나에게 정말로 좋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왜냐면 아무 자극도 없이 조용하게 혼자 있으면 도리어 불안해지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자라게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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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련의 사회적 사태와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사람의 몸에 맞추어 마음을 자라게 하는 일에 대해
사회적으로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마음을 자라게 한다는 말 조차 생경한 사람들도 있겠지.
눈에 보이는 학문적 성취, 직업적 성취 등에 우선순위가 밀려 마음 또한 나이에 맞게 차근차근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럼 대체 마음이 자란다는 것이 무엇이냐,
인간 개인이 가진 오만가지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고 표현할 줄 알면서도, 타인 또한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올바르게 소통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기에 자기 성격에 맞는 방법으로 마음을 다루는 법을 알고 극복하며 때로는 누군가가 그 방법에 대해 가르쳐 줘야 하지만, 감정의 깊이와 성숙에 대해 우리는 어디서도 터놓고 논하지 못한다. 하여 몸과 마음의 불균형이 생겨도 개인의 영역 안에서만 고립되어야 한다는 점이 안타깝다. 때로는 고립되다 못해 썩어들어가다보면, 성품이 악한 이는 타인을 해하고 선한 이는 스스로를 해한다.

몸이 건강하기 위해 밖으로부터 여러가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고 시간을 내어 운동이 필요한 것처럼 마음을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데에도 희노애락을 포함한 다채로운 감정의 스펙트럼을 외부와 주고 받는 경험, 깊은 고민, 그리고 극복이 필요하다.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회는 마음을 너무 함부로 다루고 있다. 내 마음을 존중하지 못하면 타인의 마음 또한 존중하지 못하게 되거나 혹은 타인의 마음에 지나치게 휩쓸리게 된다.
나도 이제 막 깨달은 터라 마음을 성장시키기 위한 어떤 체계성까지 생각해내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마음 또한 키 자라게 하는 것처럼 심혈을 기울여야 하며 이것 또한 타인을 판단하는 큰 지표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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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미술학원에서 처음 만났던 우리. 나는 삼수생, 그대는 재수생. 그게 벌써 14년 전.
같이 입학하고 동기로 보낸 4년. 지금에야 돌아보니 우리 인연은 그보다 더 길었네.

결혼 정말 축하해. 보기만 해도 힘이 나는 그대는 언제나 나의 비타민이야.

매일 매일의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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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바가 있다면, 목표가 있다면
관성과 고정관념을 이겨내는 생활을 매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의 변수들은 항상 변하고 있기에 (셀 수 없는 주체들이 존재하고, 시간이 공평하게 흐르는 이상 필연적이다) ‘살던 대로 산다’는 명제는 나를 점점 더 뒤로 밀어낼 뿐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순간을 새로 정의해야 한다. 미래는 과거에 있지 않고 현재에 있기에. 오늘부터 다시, 그리고 다시. 논리에 입각한 해결방안을 항상 새로 찾아야 한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면, 생각을 따라줄 만한 체력도 갖추어야 하겠다.